10/21/2020

코리아월드

휴스턴 코리아월드 주간신문

유럽역사의 날줄과 씨줄 같은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

<유럽사12>

“에이, 그노무 예배당 그만 돌아보게 되니 이제 살 것 같군” 지중해 크루즈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들은 혼잣말 소리. 그 혼잣말의 주인공은 무지하거나 무식하거나 무례한 사람이 아닌 대학 교수. 단, 불교 신자였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나는 분명 기독교 신자인데도 그 한마디에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 말을 듣는 순간, 초고추장 찍기 직전의 날 것 같은 싱싱한 느낌이 귓가를 스쳤기 때문이다. 비슷한 감정으로, 나도 베드로 성당에 들어갈 때 그 위용에 압도 되기에 앞서 퍼뜩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지금 베드로가 이 화려한 건축물을 보면 좋아라 할까?’ 외적 화려함이 아닌 내적 정신을 전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그였기에.

유럽의 역사는 본래 헬레니즘으로 이어지다가 예수의 탄생을 계기로 헤브라이즘이 싹을 틔운다. 이 때 인류의 시간이 기원전(Before Christ)과 기원후(Anno Domini 하나님의 해)로 구분되고. 마침 로마는 아우구스투스가 초대 황제가 되면서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들어서던 때.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헤브라이즘이 국교화 되면서 본격적으로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기 때문에 ‘그노무 예배당’이 그리도 많게 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는데 서론이 이리도 길어졌네.

그리스인들은 자신을 Hellen이라 불렀기 때문에 거기서 유래된 사상이 헬레니즘. 성경에는 헬라, 헬라인으로 소개된다. 그들의 예배당에 속하는 신전 사원 등의 건축물은 앙상한 뼈대만 남았다. 그만큼 오래 되었다는 증거. 페르샤와의 전쟁에서 이긴 것은 스파르타이지만 그 후 그리스의 주도권은 아테네 손에 쥐어진다. 그 아테네가 중심이 되는 델로스 동맹이 결성된 것이 BC 477이니 대략 2500년 전부터 지어 진 유적들. 기둥만 볼 수 있는 것도 다행이지 싶다.

이 헬레니즘을 본격적으로 퍼뜨린 인물은 알렉산더 대왕이다. 그는 어려서 아리스토텔레스 밑에서 공부하면서 그리스 문화에 흠뻑 빠졌다. 그가 페르샤를 비롯한 동방세계를 정복하면서 그곳에 도시를 짓고 그리스인을 정착시킴으로써 그리스 언어가 널리 전파되었고 그리스 문화는 정복당한 그 지역의 문화와 조화를 이루며 두루 퍼진 것. 인도의 불교 미술과 그리스의 미술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 간다라 미술이 그 좋은 예. 그 후 로마가 세계를 지배하면서 헬레니즘은 그리스로마 전통으로 이어지며 절정에 달하고 중세를 지나 르네상스로 다시 빛을 보게 되는데 더 자세한 내용은 그 때 가서 살피기로 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로마제국이 세계를 지배하기 시작할 즈음 예수가 탄생한다. 화려한 건축물이 들어선 로마의 중심가가 아닌, 식민지 중의 하나인 팔레스타인에서. 그것도 집이 아닌 말의 밥그릇 구유에서. 그리고 곧장 이집트로 피신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당시 유대를 다스리던 자는 로마 제국에 붙어 아첨 떨던 헤롯 안티파스. 그가 베들레헴에서 왕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선 그것을 세속적인 왕으로 오해, 그 근처 신생아들을 모조리 죽였기 때문이다. 헤롯 안티파스가 죽자 마리아와 요셉은 다시 팔레스타인으로 이주, 북부 갈릴리 호수 근처 나사렛에서 목수로 생계를 유지했다.

30대에 들어서면서 예수는 목수일을 접고 팔레스타인을 돌며 포교활동에 나선다. 사역의 핵심은 하나님 나라 선포, 이에 대한 가르침, 그리고 정신적 내지 육체적으로 병든자를 고쳐 주고, 적절한 때 기적을 행하는 것. 그런 후 인류의 영적 구원을 위해 십자가 형벌을 받는다. 이 엄청난 사건을 실행한 기간은 고작 3년. 이 짧은 시간에 전파한 것이 기존 세계의 가치관을 뒤흔들어 놓았다. 물질에서 정신으로, 이성에서 신앙으로, 철학에서 종교로… 어떤 초월적인 힘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 그래서 나에게는 이것 하나만으로도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의 부활을 믿기에 충분하다.
1세기가 저물기 전, 열한 제자들은 각지에 흩어져 포교하다 순교했고 이 때 사도 바울은 유대교에서 분리된 헤브라이즘을 설계한다. 그런 후 이 기독교는 로마제국에 의해 모진 박해를 받다 끝내는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되고. 5세기에 이르러 아우구스티누스 (Augustinus Hipponensis)에 의해 기독교는 플라톤의 철학으로 점철된 헬레니즘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신학으로 발전한다.

그의 <고백론>에 의하면 그는 어려서부터 방탕한 생활에 빠진 문제아였다. 성인이 되어서 벗어나려 애썼지만 유혹을 끊지 못하는 자신을 두고 고민하며 무화가 나무 아래에서 울부짖으며 기도하는데 갑자기 들리는 옆집 아이들의 노래 소리. . 급히 집으로 들어가 성경을 펴니 로마서 13장 13-14절, 예수의 옷을 입어야 음행과 방탕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가르침이었다. 자신의 의지로는 안되고 예수의 옷을 입어야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때부터 죄의 사슬을 끊은 자유의 몸이 되어 기독교의 교부가 되고 후에 마틴 루터와 칼뱅 같은 개혁가들에게 영향을 끼쳐 개신교가 탄생한다. 이 사실도 그 때가서 더 자세히.

결론적으로 말하면 대체로 유럽의 역사 속에서 헤브라이즘은 중세, 종교 개혁, 낭만주의 시대에 우세했고, 헬레니즘은 르네상스, 17 세기 과학혁명, 계몽주의 시대를 거쳐 지금까지 우세하지만 이 둘 사이의 갈등하기 보다는 조화롭게 녹여 있다는 것이 학자들의 견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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