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1/2020

코리아월드

휴스턴 코리아월드 주간신문

어느 부부의 이별과 사랑 (이혼은 자기 찾기가 아니야)

인간은 가슴 아픈 한의 소리를 낼 수 있으면 행복하다. 마치 조개의 아픈 상처 속에서 영롱한 진주가 만들어지듯이 행복은 한과 슬픔을 넘어 내 마음속에서 창조되는 것이다. 그래서 내 가슴에 가족과, 부부의 사랑의 눈빛에서 행복의 조건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중년 부부가 돌연 이혼하면서 “특별한 이유가 없어요. 서로 자유스럽게 살고 싶어서요” 라고 말해 놀라는 경우도 있지만 이혼 사유 중 배우자의 부정행위, 경제문제, 성격차이 등이 1~2위를 다툰다고들 하는데 경제력이 남들보다 좀 떨어진다 해서…..?! 행복한 가정은 서로 믿고 의지하는 데서 이루어진다. 대개 이혼하는 사유를 보면 출발은 좋았으나 작은 불안이 싹트기 시작해서 불행한 결과들이 나온다. 사랑보다는 믿고 의지하며 함께 살았는데 부부간의 서운함이 가슴에 존재하고 있었다면 정상적인 결혼 생활은 어려웠을 것이다. 결국 부부란 서로 다른 성격의 빈틈 관계가 있기 마련이다. 부부는 어쩔 수 없이 부닥치는 인간의 한계 상황에서 나름대로 의미 있는 방향을 찾으려는 노력을 이어가지만 마지막 순간에 이혼을 결정할 수 도 있다.
“미안 하지만 난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 왜 결혼을 했는지 모르겠어” 나는 말했다. 아내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말없이 울었다. 난 미안 했지만, 등을 돌리고 집을 나왔다. 아내와 더 이상 살아갈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내에게 이혼 서류를 꺼냈다. “집과, 자동차, 부동산과 현금, 그 중에서 당신이 30%를 가질 수 있어” 아내는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이튿날 집에 돌아와 보니 탁자 위에 아내가 써놓은 편지가 있었다. 눈물이 얼룩져 있어서 혹시 내 마음이 흔들릴 까봐 읽지 않으려 하다가 나도 모르게 읽어 내려갔다. 난 아무것도 원하지 않아…… 다만 한 달쯤 시간을 갖고 싶어, 한달 만이라도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대해줘, 아이 시험기간 이니까 신경 쓰지 않게…… 그리고 이혼조건으로 한가지 부탁만 할게…… 당신이 결혼 첫날 아침 출근 때 나를 안아서 거실에서 현관까지 갔던 것처럼 한 달간만 그렇게 해줘. “이 여자가 미쳤나?”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한 달이면 끝날 일이니까 라고 생각하며 그렇게 해주기로 했다. 첫날 거실에서 아내를 들어올려 안았을 때 몹시 어색했다. 몇 년간 우린 신체접촉이 없었으니까. 10보를 걸어 현관까지 갔을 때 뒤에서 아이가 박수를 쳤다. 멋있다면서……
나는 아이에게 웃음을 지어 보이며 아내를 내려놓고 출근했다. 둘째 날은 첫날보다 나아졌다. 아내는 내 가슴에 적극적으로 기댔고 브라우스에서는 향기가 났다. 피부의 잔 주름을 보면서 그 동안 모르는 사이 이렇게 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결혼해 이렇게 되었구나 생각하니 조금 미안했다. 셋째 날, 넷째 날, 아내를 들어 올렸을 때 오래전의 친밀함이 돌아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게 자신의 10년을 바친 이 여자 다음날 아내를 안아 나르는 것이 익숙해졌다. 어느 날 아침 아내가 옷을 고르고 있었다. 옷들이 모두 커져버렸다며 투덜댔다. 그리고 보니 아내는 들면 들수록 가벼워지는 느낌이 있었다. 이혼 걱정에 야위어가고 있는 중일까……? 또 다른 아침, 아들이 들어오더니 “엄마를 안고 나갈 시간이에요” 라며 미소를 짖는다. 녀석에게 이 일이 이제 일상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아내는 아이를 꼭 껴안는다.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 드디어 마지막 날이 왔다. 나는 아내와 헤어질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이혼을 취소하기로 했다. 회사에서 나온 뒤, 꽃집에 들려 부케를 샀다. 부케엔 “나는 이제부터 죽을 때까지 당신을 아침마다 들어 올릴께” 라고 써달라고 했다. 그리고 집으로 달려갔다. 여보 미안해 우리 헤어지지 말자 난 당신을 여전히 사랑해! 현관에 들어서자 마자 나는 소리쳤다.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안방으로 들어서자 아내는 잠든 듯 가만히 누어있었다. 그녀는 숨져 있었다. 아내가 남긴 편지에서 위암 말기였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내는 자신의 시한부 삶을 받아들였고 아들에게 다정한 부모의 마지막 모습을 기억하도록 하고 싶었던 것일까…? 부케를 떨어뜨리며 나는 주저 않은 채 아내를 안고 한없이 운다. 우리는 날마다 함께하고 가깝게 접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귀하고 가치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소중하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지요. 그러다 내 곁을 떠난 후에야 깨닫게 되지요. 그때에서야 가슴 치며 후회해도 소용없게 된답니다.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 사라진 뒤에야 빛이 나는 행복이라면 무슨 소용 이겠습니까. 사람들은 행복의 실체를 보고, 만질 수 있다면 그 것이 떠나가기 전에 소중히 다루련만 행복은 언제나 떠나가면서 제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준다는 말이겠지요……




최수철
조선일보 휴스턴 지국장
전 동아일보 휴스턴 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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