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4/2020

코리아월드

휴스턴 코리아월드 주간신문

11월17일, 을사늑약 115년, 헐버트 특사를 아시나요?

외국인 최초 독립운동가, 교육자, 선교사
1905년 뉴욕타임스 특사 호소문 재조명

11월 17일은 115년 전 대한제국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게 된 강압적인 을사늑약이 맺어진 아픈 역사가 기록 된 날 이다. 을사조약, 한일협상조약 등으로 불리는 이날의 강압적 외교권 양도 사건은 조약이 아닌 늑약으로 불리우는 것이 마땅하다. 을사조약이라는 명칭으로 역사를 배운 이들에게 을사늑약은 생소하지만 이날의 역사는 억지로 맺은 조약, 즉 을사늑약으로 표현 되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와 관련해 한국 정부도 을사조약 대신 을사늑약으로 명명하고 있다. 휴스턴총영사관 이한상 부총영사는 “정부측에서도 을사늑약으로 명명하고 있다. 아직까지도 우리사회에는 일본의 잔재 단어들이 많이 남아 있어 일본 용어, 단어, 명칭에 대한 혼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일반인들이 구분하고 분별하기 어려운 용어도 많다. 용어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리고 일본용어를 사용하는 이들에 대해 친일파로 몰아세우는 것은 무리가 있다. 용어에 대한 문제에 앞서 우리가 일본에 지지 않고 우리가 강해져야 한다”한다고 전했다. 이한상 부총영사는 아태1과장, 주일대사관 1등 서기관을 역임한 외교관이다.

1905년 뉴욕타임스
사단법인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회장 김동진)는 2020년 11월 17일 을사늑약 115주년을 맞아, 고종 황제와 고종이 비밀리에 미국에 특파한 호머 B. 헐버트(Homer B. Hulbert)가 을사늑약을 막아보고자 분투한 내용이 담긴 <뉴욕타임스> 1905년 12월 13일자와 14일자 기사 전문을 발굴해 최초로 원문(사진)과 번역문을 공개했다.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김동진 회장은 “이번에 발굴한 <뉴욕타임스> 기사는 고종 황제가 헐버트를 미국에 특사로 보내 미국을 움직여 일본의 보호조약을 막아보려고 끝까지 투쟁하는 고종의 의지를 증언하고 있다. 또한 고종이 자신은 보호조약에 서명하지 않았으니 조약이 무효라는 점을 헐버트를 통해 미국에 통고하고, 헐버트가 <뉴욕타임스> 등 언론을 통해 조약이 불법이라는 사실을 국제사회에 공표함으로써 을사늑약이 국제법적으로 명백히 무효라는 사실을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재삼 확인시켜 주고 있다. 특별하게 우리의 가슴을 찡하게 하는 것은 고종 황제와 헐버트가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서울과 워싱턴에서 눈물의 전보를 통해 을사늑약을 막아보려 몸부림치는 모습이다. 특히, 미국이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위반하고 한국을 냉대하자 이에 저항하며 분노하는 헐버트의 뜨거운 한국 사랑은 우리 역사에 마땅히 새롭게 자리매김해야 할 것이다. 을사늑약을 저지하기 위한 고종 황제와 헐버트 특사의 눈물 어린 투쟁이 국민들에게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고종 특사 헐버트
헐버트의 이 같은 활동으로 1905년 뉴욕타임스는 12월13일 “대한제국 조약을 부인하다”, 12월 14일 “대한제국 황제의 특사, 미국 국민에 호소”기사를 전했다. 뉴욕타임스 기사에 중요한 역할을 한 헐버트 특사는 미국의 감리교회 선교사이자, 목사로 육영공원 교수로 근무하여 영어를 가르쳤던 교육인으로 대한제국의 항일운동을 적극 지원했다. 헐버트는 고종 황제의 최측근 보필 역할 및 자문 역할을 하여 미국 등 서방 국가들과의 외교 및 대화 창구 역할을 해왔다. 고종 황제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얻은 외국인으로 고종황제의 특사를 세 번 받았다. 대한제국의 분리 독립 운동을 지지하고 지원하였으며, 1907년 헤이그 비밀밀사에 적극 지원하여 밀사 활동을 하였다. 1919년 3.1운동을 지지했다. 헐버트는 한국어도 매우 유창하게 하였으며,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는 대한제국 시대 언론인으로 가운데에는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외국인 1위로 꼽히기도 했다. 안중근 의사가 존경한 인물이기도 하다. 헐버트는 2018년 tvN에서 방영 된 미스터션샤인에서 요셉 선교사의 실제 모델이기도 하다. 헐버트는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한 외국인’으로도 불렸다.

외국인1호 독립운동가
헐버트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 연구의 개척자 역할도 수행했다. <한국사>, <한국망국사> 등 두 권의 저서를 집필했고, 훈민정음(한글)에 대해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소리글자’라고 극찬했다. 그는 육영공원 교사 시절 세계 각국의 학술 등을 한글로 간략하게 소개한 한국 최초의 세계지리 교과서 사민필지를 쓰기도 했다. 일련의 사건에 의해 일본은 헐버트 선교사를 한국에서 추방했고, 이후 그는 프랑스와 스위스 등 유럽 각지를 방황하기도 했다. 프랑스에 있을 때는 한동안 프랑스 YMCA 간사로도 일했다. 미국에서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국의 독립을 주장하고, 정부의 대한 정책을 비판하며 한국을 끝까지 도왔다.

한국에 잠들다
헐버트는 해방 후 이승만 대통령의 초청으로 84세 고령의 나이에1949년 국빈 방한했다. 그는 위험한 여행길임에도 광복된 대한민국의 모습이 보고 싶어 무리하게 돌아왔다가, 1주일만인 8월 5일 소천하며 유언으로 “나는 웨스트민스터 성당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헐버트는 유언대로 현재 마포구에 위치한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에 안장됐다.
<동자강 기자>


1905년 12월 13일 뉴욕타임스 기사

‘대한제국, 을사조약을 부인하다(Korea Repudiates Treaty)’
워싱턴(Washington) 1905년 12월 12일 발–대한제국 황제의 특별사절인 미국인 헐버트(Homer B. Hulbert)가 대한제국으로부터, 대한제국 황제가 대한제국과 일본 사이에 맺어진 조약이 무력에 의해 맺어졌기에 무효라고 선언했다는 전보를 받았다. 또한, 대한제국 황제는 지금의 조약 문구로는 앞으로 절대 서명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어서 11월 17일의 무도한 폭력행위가 반복될 것으로 보았다. 헐버트 특별사절은 오늘 “이러한 대한제국 황제의 선언은 대한제국의 진의를 담은 첫 번째 발표로서 일본의 반역행위에 대한 대한제국의 현실적 태도를 보여 주었다. 대한제국 황제는 몇 주 동안 사실상 감금상태에 있었으며 일본은 대한제국과 일본 간의 조약이 우호적 분위기에서 맺어졌다고 거짓 성명을 발표했다. 이제 일본의 성명이 거짓임이 드러난 것 아닌가. 조약은 협박과 총칼로 위협하여 맺어졌다. 그러나 대한제국 황제는 마침내 일본의 비상 차단선을 뚫고 이렇게 나라 밖에 진실을 전하는 데에 성공했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헐버트는 “본인의 미국 방문 목적은 이제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본인 의견을 추가하자면, 대한제국 황제는 일본의 배신적 행위를 예견하고 이를 미연에 막아보고자 본인을 통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대통령에게 호소하고자 했다. 그러나 작금 본인의 방문 목적이 난망해지고, 서울에서 일본의 쿠데타는 본인이 워싱턴에 도착하던 바로 그날 전격적으로 감행되었다. 대한제국 황제는 확신했다. 만약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이 황제의 마음을 안다면 미국 정부는 일본의 성명을 받아들이기 전에 질문을 던지며 이를 받아들이는데 주저하였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1905년 12월 14일 뉴욕타임스 기사


‘대한제국 황제의 특사, 미국 국민에 호소(Appeals to the Public for Emperor of Korea)’
대한제국 고종 황제의 특사 헐버트(Homer B. Hulbert)는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대통령이 일본을 제어하지 못하고 있다고 불평하면서, 한국이 학대당하고 있다고 말한다.헐버트 특사는 보호조약이 강박에 의해 이루어졌고, 대한제국의 주권이 사실상 소멸되었다고 주장한다. (중략) 대한제국 황제는 1905년 11월 17일의 조약은 강박에 의해 행해졌기에 무효라고 선언했다. 곧바로 미국에 일본에 대한 항의문을 전달하라. 일본과 미국의 공동 보호도 시도해보라. 대한제국 황제는 조약 문구가 수정되지 않으면 절대 서명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중략) 그러나 미국 정부는 대한제국 공사관과는 한마디 상의도 없이 일본의 성명만 믿고 서울의 미국 공사관을 도쿄로 옮겨버렸다. 세상천지에 주권국가가 이렇게 모욕적인 대접을 받은 적이 있단 말인가? 대한제국은 약자이다. 그렇다면 공평한 거래는 강한 자에게만 적용되는 것인가? 대한제국은 미국보다는 프랑스와 더 많은 공평한 거래를 해왔다. 그러나 프랑스 정부는 공사관을 서울에서 옮기는 것을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중략) 많은 한국인들은 자신의 논밭에서 추수를 해야 할 시기에 총으로 위협을 당하며 끼니도 때우지 못할 저임금으로 일본인들을 위해 일할 것을 강요받고 있다. 그리 수확한 농작물들은 일본인들이 사용하거나 또는 썩어나간다.”헐버트 특사에 따르면 대한제국은 사실상 일본의 지배 상태에 놓여 있으며, 일본인들은 한국인들을 일본에 종속된 존재로 여겨 한국인들에게는 어떠한 인권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김동진 회장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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