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9/2021

코리아월드

휴스턴 코리아월드 주간신문

훈족 남하 – 게르만 민족 이동 – 서로마제국 멸망

<유럽사21>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들이 왕위를 차지하는 권력다툼으로 이어지다 379년 테오도시우스 1세가 즉위한다. 그는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한 황제였다. 그의 죽음으로 395년, 로마 제국은 또다시 동서로 나뉜다. 이즈음 서로마제국은 밀려오는 게르만 부족 떼를 막아낼 수 없어 본격적으로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400년부터 410년 사이 대략 30만에 이르는 게르만 부족들의 이동을 지켜봐야 하는 혼란의 연속이었다.

4세기 중엽 볼가강 동쪽에 기마에 능숙한 훈족이 모습을 드러냈다. 학자들은 이들과 흉노족은 같은 민족이라고 한다. 예부터 타민족을 비하해 부르는 못된 버릇이 있는 중국은 훈(따뜻한 사람)을 흉노(흉측한 노예) 라고 불렀기 때문이란다. 이들은 고조선 문명의 후예로 BC 108년경에 이들 일부가 중앙아시아로 이동한 후 4세기에 유럽으로 진출한 것으로 추정된다.

조상이야 어찌 되었든 이들은 볼가강 근처 초원지대에서 유목생활을 하면서 힘을 키운다. 날쎈 말을 배양하고, 말 위에서 다루기 쉬운 활을 개발하는 등 특유의 기마 전술을 연마했다. 극심한 가뭄이 계속되자 375년 목초지를 찾아 볼가강을 건너게 되고 동유럽 평원에 살고 있던 게르만족인 동고트족을 공격, 땅을 빼앗고 훈족의 땅, 항가리(Hungary)라 명명한다. 그들의 언어로 gary는 땅이라는 뜻. 6세기경 이들에게 쫓겨 내려온 피난민들이 기마병력을 피해 물위에 세운 도시가 지금의 베네치아.

이 기세를 몰아 훈족은 계속 남하, 서고트족의 땅도 빼앗고 내쫓았다. 살곳을 잃은 서고트족은 도나우강을 건너 로마령으로 이주하게 된 것. 처음에는 로마 황제의 난민수용정책에 의해 침입이 아닌 일종의 이민 형식이었다. 그러나 난민을 감독하던 군인들의 학대에 불만을 품고 폭동을 일으킨다. 그 후 발칸 북부에 자치령을 요구했으나 거절 당하자 그대로 남하, 하드리아노폴리스에서 로마군을 격파한다. 로마군은 황제를 포함한 약 1/3의 병력이 전사함으로써 한니발과의 칸나이 참변 후 600년만에 처음 당하는 재앙 같은 패배를 맞보고.

410년 서고트족은4일 동안 로마를 약탈했다. 참고로, 이를 본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로마의 멸망 원인을 기독교에서 찾으려는 이교도들의 의견을 반박하기 위한 기독교 변증서, <신국 De civitate Dei>을 쓴다. 이어서 418년에는 이베리아 반도에 왕국을 건설한다. 한편 프랑크족과 부르군드족은 갈리아(지금의 프랑스) 지방의 북부와 남부에 각기 정착하고. 앵글로족, 섹슨족은 브리타니아섬으로 들어가 켈트족을 한켠으로 밀어내고. 이렇게 훈족에게 땅을 빼앗긴 게르만족의 여러 부족들이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 유럽 전역을 옮겨다니는 민족대이동이 시작되었고 이것이 오늘날 유럽 국가들로 형성 된 것.

429년에는 라인강변에 거주하던 반달(Vandal)족이 북아프리카를 정복하여 왕국을 건설한 후 455년에는 로마시를 습격, 약탈했다. 여기서vandalism이란 단어가 생긴다. 야만족의 침투는 이런 식으로 끊임없이 이어졌지만 사실 서로마제국의 주요 세입원인 북아프리카만 보전되었다면 그리 쉽게 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보존을 위해 동로마는 금 10만 파운드를 모았다. 그 당시 동로마의 평균 세수가 금 27만 파운드였으니 그것이 얼마나 엄청난 액수인가를 짐작하게 한다. 이들은 선박 1,000여척 규모의 함대를 구축하고 10만 병력을 탑승시켰다. 하지만 이 막강한 해상병력도 살육전을 벌인 끝에 수장된다.

동로마제국은 그냥 놀고 있다가 잉여자금으로 도운 것이 아니다. 수시로 침입해 오는 페르시아와 아틸라(Attila the Hun)가 이끄는 훈족들을 상대해야 했다. 해마다 황금 350 파운드를 훈족에게 지급해왔는데 후에는 수도 콘스탄티노플이 훈족에게 포위되자 수도를 지키기 위해 금 6천 파운드와 도나우 강 하류 일대의 영토를 떼어주어야 했다.
그래서 동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는 아틸라를 암살할 계획을 세운다. 우선 아틸라의 최측근인 에디카를 포섭, 아틸라를 암살한 후 로마로 귀화해서 부귀영화를 누리라고 꼬드긴다. 에디카는 착수금으로 금 50파운드를 요구했고. 449년 여름, 황제는 자객을 포함시킨 사절단을 보낸다. 그러나 이 계획은 에디카의 배신으로 미수에 그친다. 이 때 아틸라가 보인 행동이 놀랍다. 사절단으로 가장한 암살단을 죽이는 대신 그들의 목에 금 100파운드를 걸어서 돌려보낸다. 처형 대신 상대의 자존심을 긁어 망신을 주는 여유를 보인 것.

당시 서로마 황제 발렌티니아누스 3세에게는 호노리아라는 누이가 있었다. 그는 자신을 임신시킨 정부를 황제로 만들려고 역모를 꾸민다. 하지만 사전에 발각, 정부는 처형되고 호노리아는 콘스탄티노플에 유폐된다. 재기를 노린 호노리아는 아틸라에게 청혼을 상징하는 금반지를 준다. 아틸라는 금반지를 끼면서 지참금으로 서로마 제국 영토의 절반을 요구했다. 그리고 452년, 지참금을 핑계로 포강을 건너 이탈리아 반도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이 때 협상의 귀재 레오 1세가 직접 아틸라를 만나 강화 조약을 맺고 돌려보낸다. 항가리로 돌아간 아틸라는 이듬해 게르만계의 왕비를 얻었으나 아틸라는 첫날밤에 죽는다. 이를 소재로 <니벨룽의 노래>라는 고전 명작이 쓰여졌다.

로마는 어떻게 흥했는가를 이야기할 땐 학자들의 의견은 일치하지만 왜 망했는가를 말할 때는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대체로 꼽는 것들은, 사치 – 성적타락 – 이혼율이 증가 – 저출산. 과중한 세금. 무상으로 뿌리는 빵과 경기장 티켓같은 로마판 포퓰리즘. (요즈음 한국 이야기 아니다?) 암튼, 서로마제국은 이제 더 이상 버틸만한 여력이, 병력이, 자금이, 그리고 영토가 없었다. 476년 게르만족 용병 대장 오도아케르가 반란을 일으켜 마지막 황제를 폐위시킴으로써 천년동안 세계를 호령하던 서로마 제국은 멸망하게 된다. BC753년 로물루스로 시작해서 AD476년 로물루스로 끝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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