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9/2021

코리아월드

휴스턴 코리아월드 주간신문

해마다 섣달 그믐날이 되면 일본의 우동집들은 일년 중 가장 바쁩니다. 삿포로에 있는 우동집 “북해정” 도 이 날은 아침부터 눈 코 뜰새 없이 바빴습니다. 이 날은 일년 중 마지막 날이어서 그런지 밤이 깊어지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발 걸음도 빨라졌습니다. 그러더니 10시가 지나자 손님들도 뜸해졌습니다. 무뚝뚝한 성격의 우동집 주인 아저씨는 입을 꾹 다 문채, 주방의 그릇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남편과는 달리 상냥해서 손님들에게 인기가 많은 주인 여자는 “이제 두 시간이 지나면 새해가 시작되겠구나” 정말 바쁜 한 해였어, 하고 혼자 말을 하며 밖에 세워둔 간판을 가두기 위해 문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출입문이 드르륵 하고 열리더니 두 명의 아이를 데리고 한 여자가 들어섰습니다. 여섯 살과 열 살 정도로 보이는 사내 애들은 새로 산 듯한 옷을 입고 있었고, 여자는 낡고 오래된 체크 무늬의 반 코트를 입고 있었습니다. “어서 오세요” 주인 여자는 늘 그런 것처럼 반갑게 손님을 맞이했습니다. 그렇지만 여자는 선뜩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머뭇머뭇 말했습니다. “ 저… 우동… 1인분만 시켜도 괜찮을까요?…” 뒤에서는 두 아이들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세 사람은 다 늦은 저녁에 우동 한 그릇 때문에 주인 내외를 귀찮게 하는 것은 아닌가 해서 조심스러웠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알아 차렸는지 주인 아주머니는 얼굴을 찡그리기는 커녕 환한 얼굴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네 네… 자 이쪽으로…” 난로 바로 옆의 2번 식탁으로 안내하면서 주방 안을 향해 소리쳤습니다. “여기, 우동 1인분 이요!” 갑작스런 주문을 받은 주인 아저씨는 그릇을 정리하다 말고 놀라서 잠깐 일행 세 사람에게 눈 길을 보내다가 곧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네! 우동 1인분!” 그는 아내 모르게 1인분에 우동 반 덩어리를 더 넣어서 삶았습니다. 그는 세 사람의 행색을 보고 우동을 한 그릇밖에 시킬 수 없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자, 여기 우동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가득 담긴 우동을 식탁 가운데 두고 이마를 맞대며 오손 도손 먹고 있는 세 사람의 이야기 소리가 계산대 있는 곳까지 들려왔습니다. “국물이 따뜻하고 맛있네요.” 형이 국물 한 모금 마시며 말했습니다. “엄마도 잡수세요.” 동생은 젓가락으로 국수를 한 가닥 집어서 어머니의 입으로 가져갔습니다. 비록 한 그릇의 우동이지만 세 식구는 맛있게 나누어 먹었습니다. 이윽고 다 먹고 난 뒤 15엔(한화 약 1.500원)의 값을 지불하며… “맛있게 먹었습니다.” 라고 공손히 머리를 숙이고 나가는 세 사람에게 주인 내외는 목청을 돋워 인사를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 후, 새해를 맞이했던 “북해정”은 변함없이 바쁜 날들 속에서 한 해를 보내고 또 다시 12월31일 섣달 그음 날을 맞이 했습니다. 지난해 이상으로 몹시 바쁜 하루를 보내고 10시가 지나 가게 문을 닫으려고 하는데 드르륵 하고 문이 열리더니, 두 명의 사내 아이를 데리고 한 여자가 들어왔습니다. 주인 여자는 그 여자가 입고 있는 체크 무늬의 반 코트를 본 순간, 1년 전 섣달 그믐날 문 닫기 직전에 와서 우동 한 그릇을 먹고 갔던 그 손님들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여자는 그날처럼 조심스럽고 예의 바르게 말했습니다. ‘저… 우동…1인분입니다만… 괜찮을까요.?” “물론 입니다. 어서 이쪽으로 오세요.” 주인 여자는 작년과 같이 2번 식탁으로 안내하면서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여기 우동 1인분 이요.” 주방 안에서, 역시 세 사람을 알아본 주인 아저씨는 네엣! 우동 1인분!” 그리고 나서 막 꺼버린 가스레인지에 불을 붙였습니다. 물을 끓이고 있는데 주인 여자가 주방으로 들어와 남편에게 속삭였습니다. “저 여보, 그냥 공짜로 3인분의 우동을 만들어 줍시다.” 그 말에 남편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안돼요. 그렇게 하면 도리어 부담스러워서 다신 우리 집에 오지 못할 거요.” 그러면서 남편은 지난해처럼 둥근 우동 하나 반을 더 넣어 삶았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아내는 미소를 지으면서 다시 작은 소리로 말했습니다.

“여보, 매일 무뚝뚝한 얼굴을 하고 있어서 인정도 없으려니 했는데 이렇게 좋은 면이 있었구려.” 남편은 들은 척도 않고 입을 다문 채 삶아진 우동을 그릇에 담아 세 사람에게 가져다 주었습니다. 식탁 위에 놓아 한 그릇의 우동을 둘러싸고 도란도란하는 세 사람의 이야기 소리가 주방 안의 두 부부에게 들려 왔습니다. “아… 맛있어요…” 내년에도 먹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주인 내외는 순식간에 비워진 우동 그릇과 대견스러운 두 아들을 번갈아 바라보는 어머니의 모습에 눈시울이 뜨거워 졌습니다. 이번에도 우동 값을 내고 가는 세 사람의 뒷모습을 향해 주인 내외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펌글 <다음주에 계속>





최수철
조선일보 휴스턴 지국장
전 동아일보 휴스턴 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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