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9/2021

코리아월드

휴스턴 코리아월드 주간신문

베니스 상인들의 농간에 놀아난 4차 십자군

1차 원정은 온갖 난관 끝에 그래도 예루살렘은 탈환했지만 7차까지 이어지는 나머지 전쟁은 정말이지 역사에서 지우고 싶은 소모전들. 그도 그럴 것이 교황의 호소를 듣고 유럽 각지에서 모인 기사들이 제대로 통제될 리가 없다. 2차 때에는 소아시아 등지에서 이슬람군에게 참패했다. 겨우 팔레스타인에 도착한 나머지 군인들은 다마스커스에서 후퇴할 수 밖에 없었고.
1187년, 예루살렘 왕국을 이슬람에게 도로 빼앗기자 이를 다시 찾겠다고 나선 제 3 차 원정군. 신성로마제국의 프리드리히 1세는 강을 건널 때 말에서 떨어져 갑옷의 무게 때문에 그대로 수장되었고 같이 출정한 영국의 리처드 1세와 프랑스의 필리프 1세는 성지 탈환을 실패한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봐줄만 했다. 전쟁을 일으킨 명분이 뚜렷했고 승리가 있으면 패배도 있는 것이 싸움이니까. 그런데 4차는 달랐다. 명분도 없고 이기고도 치욕적인 싸움이었으니까.
물론 처음부터 치욕스려울려고 출정한 것은 아니다. 교황 이노센트 3세는 예루살렘 재탈환을 꿈꾸며 4차 십자군을 모집했으니까 명분도 있었다. 하지만 이전과 같이 곧장 성지로 향하지 않고 작전을 달리 했다. 이집트에 웅지를 튼 막강한 이슬람 세력을 꺾은 후에 예루살렘으로 갈 계획을 세운다. 이 계획도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새로운 작전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성지회복이라는 명분은 사라지고 전쟁이 사리사욕을 채우는 수단으로 변질되었기 때문에 치욕스런 전쟁이 된 것.
이집트를 공격하자면 바다로 가는 것이 훨씬 수월했다. 하지만 교황은 배가 없었다. 그 당시 해상 수송이 가능한 유일한 국가는 베네치아 공화국뿐. 그래서 1201년 6인의 십자군 기사는 베네치아의 총독 엔리코 단돌로(Enrico Dandolo)를 찾아가 불리한 조건으로 계약을 맺는다.
베네치아는 기병 기마 보병과 보급품을 실을 완전 무장된 갤리선을 준비하고, 십자군은 은 8만 5천 마르크와 정복지의 절반을 주기로 한 것. 그런데 예정된 날짜가 되자 일이 틀어지고 말았다. 베네치아에 모인 십자군은 예상 병력의 1/3 정도뿐. 당연히 모금액도 절반에도 못미치는 수준이었다.
결과적으로 십자군은 계약을 위반했을 뿐만 아니라 베네치아 공화국에 막대한 금전적 손해를 입히게 된 것. 그런데 단돌로는 상업국가의 수장답게 머리를 잘 썼다. 십자군을 이용하여 20년전 항가리에게 빼앗긴 항구도시 자다르(Zadar)를 되찾을 생각을 한다. 배를 내어 줄테니 가서 자다르를 빼앗아 와라. 그것으로 너희가 진 빚을 퉁 치겠다고 한 것. 십자군은 이집트 가는 도중에 알바 하나 하고 가는 것처럼 간단하게 생각했는지 이 제안을 받아들여 1202년 자다르를 공격, 같은 기독교 국가를 잔인하게 짓밟았다. 이 소식을 들은 교황 이노센트 3세는 격노. 십자군과 베네치아 모두를 파문해 버렸고.
그 당시 비잔틴 제국은 쿠데타에 성공한 알렉시우스 3세가 다스리고 있었다. 그는 동생이자 황제인 이사키우스 앙겔루스에게 반기를 들어 그의 눈을 뽑고 감옥에 가둔 후 스스로 황제가 된 인물이다. 때마침 베네치아에 망명 중인 앙겔루스의 아들이 십자군에게 접근, 한가지 솔깃한 제안을 한다.
콘스탄티노플을 쳐서 옥에 갇힌 자기 아버지의 왕위를 회복시켜 준다면 이집트 출전 비용을 대고 병력도 지원하고 덤으로 콘스탄티노플 교회도 로마 교회 관활권에 예속시키겠다는 황홀한 제안. 첫 알바에서 돈맛을 본 십자군은 이보다 더 큰 돈이 되는 두번째 알바를 마다할 필요가 없었다. 망설임도 없이 이듬해 베네치아와 합세,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했다. 해상에서는 베네치아군이, 육지에서는 4차 십자군의 주력부대인 프랑스 군이 튼튼한 성벽을 뚫었다. 무방비 상태로 급습을 당한 알렉시우스 3세는 잉겔루스를 복위시키고 아들 알렉시우스 4세를 공동 황제로 세웠다.
목적을 달성한 알렉시우스 4세는 약속을 지키려고 국고를 열어보니 텅 비어 있었다. 더군다나 교회의 개종 문제는 아버지도 적극 반대했기 때문에 십자군과의 두 가지 약속을 하나도 지킬 수 없었다. 엄청난 세금을 거둬 한가지 약속이라도 지키려 했지만 국고에는 국민들의 원성만 채워졌다. 무모한 약속을 한 알렉시우스4세는 폐위되고 새롭게 황제가 된 알렉시우스 5세는 십자군에게 선언했다. 전임자와의 계약은 위법이고 돈이 없어 약속을 지킬 수도 없다고.
이에 베네치아군과 십자군은 다시 총공세를 펴 콘스탄티노플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단돌로는 3일 동안 방화, 살인, 약탈, 강간, 등 점령군이 할 수 있는 온갖 악행을 다 허용했다. 참고로, 지금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 성당 정문에 있는 네 마리의 청동 마상도 그 때 원형 경기장에 있던 것을 약탈해 온 것이라고. 베니스 상인의 농간으로 제 4차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1204년부터 그들이 물러난 1261년 동안을 역사에서는 <라틴 제국>이라 부른다.
애초에 비잔틴 제국이 요청한 것은 콘스탄티노플 코앞까지 밀고 들어온 술탄의 위협을 막을 용병을 보내달라는 것이었는데 오히려 콘스탄티노플을 침략, 결과적으로 그리스정교회는 로마교회와 완전히 결별하게 되었고. 7차까지 치러진 십자군 전쟁은 아무 성과 없는 소모전의 연속이었기 때문에 교황의 권위는 계속 실추되어 한 세기 뒤에는 교황청을 프랑스의 아비뇽으로 옮겨야 하는 지경에 이른다. 역으로 왕권은 강화되어 근대국가의 틀이 형성되었고 고도의 동방 문화와 문물이 유입되어 무역업이 발달하게 된다. 유럽인들은 후추, 설탕의 맛을 알게 되었고 이때 들어온 나침반은 앞으로 펼쳐질 신대륙 발견에, 화약은 신대륙 점령에 쓰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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