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25/2021

코리아월드

휴스턴 코리아월드 주간신문

이성과 신앙은 상충 아닌 보완관계라는 스콜라 철학

이제 중세시대를 마무리하면서 그 시대의 꽃으로 상징되는 대학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대체로 대학은 지성의 모임이라는 의미로BC387년 경 플라톤이 아테네에 세운 아카데미아에서 시작한 것으로 본다. 이에 비해 중세에 시작된 대학은 지금 우리가 아는 대학을 의미한다. 그런데 중세의 대학은 신학이 중심이었고 그 신학의 핵심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기반으로 형성된 스콜라 철학이다.
이 두 석학의 사상은 라파엘이 그린 아테네 학당 그림 속에 녹아 있다. 우주의 기원과 구조에 관한 책 <티마이오스>를 왼쪽 옆구리에 끼고 오른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는 플라톤과 <니코마스 유리학>을 들고, 지금 자세히 보니 책도 땅에 놓을 듯이 허벅지로 받치고 있구만, 땅을 덮을 듯 오른 손을 편 채 뭔가 심각하게 이야기 하는 그림.
이 둘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먼저 스승인 플라톤이 ”이보게, 자네는 그림자에 불과한 현실 세계에만 몰두하고 있어. 그렇지 말고 지성의 눈으로 하늘을 보게나. 실체인 이데아가 보이지 않는가” 하고 말문을 여니까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가 “선생님,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현실 세계부터 탐구해 나가야지요.” 했을까. 아님 제자가 먼저 “선생님, 따지고 보면 우린 행복해지자고 사는데 그 행복은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 얻을 수 있다니까요. 습관과 교육으로 완전한 덕을 갖추기만 하면요.” 라고 하니까 선생님은 “아리야, 난 이리 오래 살면서 한가지 깨달은 것이 있단다. 아무리 박식해도 우리 인간의 지성과 이성은 한계가 있다는 것. 그러니 너도 이제는 초월적인 실제, 이데아가 있음을 인정하려무나.”였을까?
요즈음 한국에서는 ‘테스형, 나라가 왜 이래’라고 묻는다던데… 설마, 무슨 대답이라도 듣겠다는 것은 아니겠지. 그 형은 살아 생전에도 토론을 즐겨서 남에게 질문만 해댔지 대답은 아꼈다던데… 자기가 대답하면 토론이 끊기니까. 하지만 그의 제자와 그 제자의 제자가 나눈 둘만의 대화는 유럽에서 중세 신학과 만나 세상이 뒤집히는 위대한 업적을 남긴다. 중세 1천년이 흐르는 동안 플라톤의 사상은 성 어거스틴(354-430)에 의해,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은 토마스 아퀴나스 (1225-1274)에 의해 신학에 접목되어 스콜라 철학으로 재생되기 때문에.
젊어서 방탕했던 어거스틴은 한 때 마니교에 빠지기도 했지만 어머니의 기도와 밀라노 주교 암부로시우스의 가르침 덕에 참회의 눈물을 쏟는다. 391년 사제가 되어 2세기부터 시작된 교부철학의 정점을 찍으며 스콜라 철학이 나올 때까지 중세를 이끌어 간다. 펠라기우스의 선행구원론을 세게 비판하면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은총을 강조, 중세뿐 아니라 후세 종교 개혁의 주도자들인 루터 쭈잉글리 칼뱅 등에게도 큰 영향을 끼친다.
이미 언급했듯이 십자군 원정으로 동서 문화의 교류가 활발해 졌고 그 때 들여온 학문을 계속 연구할 목적으로 대학이 자연발생 한다. 그 한 예로 이탈리아 볼로냐에 다수라는 의미를 지닌 우니베르시타스 (Universitas)가 생겼다. 이것이 세계 최초의 대학이다. 법과 대학의 원조이기도.
파리의 노틀담 성당학교는 파리대학으로 발전했다. 본래 성당학교였기 때문에 이곳은 당연히 철학대학으로 유명했다. 그리고 독지가들이 학생들을 위해 지은 기숙사 콜로지움(Collegium)은 지금의 단과대학인 College로 발전하였고. 파리대학의 콜로지움은 소르본느 신부가 가난한 신학대학생들을 위해 기부한 것이 인연이 되어 소르본느 대학이 되고. 영국과 프랑스의 관계가 악화되자 영국의 국왕은 파리 대학에 유학중인 영국인을 불러들여 세운 것이 옥스퍼드 대학. 이 대학에서 종교분쟁이 일어나자 이를 피해 케임브리지로 나온 교수들과 학생들의 모임이 케임브리지 대학이 되었고.
대학에서의 가르침과 배움의 열기가 뜨거워지고 인간의 이성을 긍정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자 지난 천년 동안 절대적 진리로 군림해 온 교부철학에도 의심의 눈초리가 쏠리기 시작했다. 이 의심의 눈초리를 확신의 눈빛으로 바꿔 줄 철학적 논증으로 등장한 사상이 스콜라 철학이다. 본래 스콜라는 ‘여유’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스콜레를 라틴어 schola로 적은 것으로 오늘날에는 학파라는 뜻으로 이해되고 있다. 스콜라 철학의 대표적인 학자가 토마스 아퀴나스. 그는 교부철학에 의해 체계화되어 천년 간 이어진, 신앙을 이성보다 우위에 두는 교리를 합리적인 논증을 통해 다시 정리했다.
귀족의 자제로 태어나 나폴리 대학을 거쳐 파리 대학으로 유학한 토마스는 그곳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거장 알베르투스 마그누스의 가르침을 받는다. 그는 동료 학생들로부터 ‘시칠리아의 벙어리 황소’로 불린다. 커다란 덩치에 지나치게 과묵한 그의 성격에 붙여 진 별명. 그러나 그의 재능과 무한한 잠재력을 꿰뚫어 본 알베르투스 교수는 ‘언젠가 벙어리 황소가 한번 울면 온 세상이 놀랄 것’이라 했다고.
학업을 마친 후에는 파리 대학의 교수로 재직하면서 스콜라 철학을 완성, 중세 기독교의 최고 신학자가 된다. 그의 주장은 이렇다. 이성과 신앙, 철학과 신학은 구분되지만 상충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필연적인 조화라는 것. 그는 진리를 철학에 관한 것과 신학에 관한 것으로 구분했다. 이성으로 알 수 있는 진리는 철학에, 이성을 초월하는 진리는 신학에 두었다. 구원 심판 영혼불멸 등은 철학과 신학 두 분야에서 다룰 수 있는 진리이지만 삼위일체 성육신 부활 재림 등 이성을 넘어서는 진리는 신학의 영역에 두고 설명했다. 그래서 그의 가르침에 의하면 신앙과 이성은 서로 부딪히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향해 날 수 있는 두 날개와 같이 서로 보완하는 것이다.



  • Sign up
Lost your password? Please enter your username or email address. You will receive a link to create a new password via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