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22/2021

코리아월드

휴스턴 코리아월드 주간신문

그녀는 뜬금없이 내게 청혼을 했다.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여자가 어느 날 느닷없이 내 작업실에 찾아와 자기와 결혼해 달라고 졸랐을 때, 나는 당황스럽기보다는 그냥 황당한 기분으로 멍하니 그녀를 쳐다보았다.
“무슨…말씀이신지…?”
“그냥… 저와 결혼하면 안되요?”
“…?”
나는 잠깐 생각을 모아 보았었다. 손으로 꼽아보면 선배의 소개로 그녀와 만난 지 불과 세 번, 그것도 두 번은 그냥 인사치레 정도였고, 한번은 차 한 잔 사달라고 해서 자판기에서 100원짜리 커피 두 잔을 뽑아 나눠 마신 후 작업실 근처 분식집에서 비빔쫄면 한 그릇씩 시켜 먹은 것이 고작이었다.
나는 그 때 작업복 차림으로 그녀를 어디 근사한 곳으로 데려가 분위길 잡을 형편도 못되었고, 또 그럴 생각도 없었기 때문에 그야말로 그냥 그렇게 대접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녀는 100원짜리 커피를 뽑아줄 때부터 기가막힌 표정이었고, 더군다나 분식집엘 가서 내가 일방적으로 비빔쫄면이 맛있다고 의견도 물어보지 않고 시켜준 것이 무척 자존심이 상했던 듯했다. 그러나 그녀는 암말 없이 커피를 다 마셨고 시켜준 쫄면도 찌꺼기 한 점 없이 싹싹 다 비웠었다.
“맛있죠? 이 집 쫄면 죽인다니까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녀는 자글자글 웃으며 지갑을 꺼냈었다.
“제가 계산할게요.”
“아, 아닙니다. 그래도 절 찾아오셨으니 손님인데… 제가 낼게요.”
내가 당황스럽게 손을 젓자 그녀는 ‘아, 그러세요?’ 하는 표정을 지으며 웃음기 머금은 얼굴로 나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핸드백에서 담배를 꺼냈다.
“여기… 담배 피워도 되나요?”
“아… 네.”
그녀는 바이스로이 한 대를 입에 물곤 내 앞으로 불쑥 라이터를 밀어주었다.
“…예?”
“불 좀 붙여보세요!”
나는 라이터를 든 채 잠깐을 망설였다.
ㅡ참 묘한 아가씨네…
내가 멀뚱멀뚱 눈을 굴리며 라이터를 켜주자 그녀는 내 손을 끌듯이 모아 쥐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리곤 아주 맛나게 한 모금을 빨아 당겼다가 몰캉몰캉 연기로 도넛을 만들어 뿜었다.
“수민씨.” / “아, 네.”
“저기요, 기왕이면 커피도 한 잔 더 마셨으면 좋겠는데… 제가 쏠까요, 이번엔?”
“아닙니다.”
그는 그녀가 시키는 대로 쭈뼛쭈뼛 자판기 앞으로 걸어가 커피 두 잔을 다시 뽑았다. 동전을 넣고 단추를 누른 후 컵이 떨어지고 커피가 잔에 채워지는 짧은 순간 동안 그의 머리는 복잡해졌다.
-ㅡ이 아가씨가 왜 이러나?

한 달쯤 되었을까. 어느 날 갑자기 대학 동문인 허윤 선배에게서 작업실로 전화가 걸려왔다.
“수민이가?”
“아, 윤이 형. 언제 왔어?”
꽤나 오랜만에 듣는 반가운 목소리였다. 그 선배는 대학 졸업 후 바로 중견 건설업체에 들어가 건축과 일을 하고 있었다. 그 선배의 실력으로 봐서는 대기업에도 너끈히 들어갈 수 있었지만, 그는 굳이 큰 회사를 마다하고 이제 막 커나가는 중견 건설업체를 택했었다. 간단한 이유였다.
“너무 큰데 가믄 몬 큰다.” / “형도 참… 얼마나 더 클라구?”
“얌마. 사내새끼가 한 번 발을 담그믄 끝장을 봐야제! 내 그 회사 사장자리 뺏을 거구마.”

꿈 한 번 야무졌다. 그렇지만 그의 야망도 전혀 실현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그가 몸담은 네모라는 중견 건설업체는 그 당시 막 커가는 떠오르는 별이었고, 특히 오너가 합리적인 사고를 갖고 있어서 인재를 파격적으로 등용한다고 소문이 났었기 때문이다. 그는 뛰어난 외국어 실력 덕에 입사 1년도 채 안되어 대리로 승진해 있었고, 외국 발주업체와의 기술미팅에 고정멤버로 참석하기 위해 해외 출장이 잦아 얼굴 보기가 드문드문 어려운 처지였다. 그런데 그가 아무 예고도 없이 불쑥 전화를 걸어온 것이었다.
“어~어…며칠 됐다.”
“이번엔 또 어딜 갔었어?”
“구라파쪽하고… 근디, 니 오늘 저녁에 시간 좀 내야겄다.”
그는 이 쪽 사정은 들어보지도 않고 다짜고짜 명령조로 말했다.
“왜? 먼 일인데?” / “내 깔치 한 개 소개시켜 줄라꼬.”
“깔치?”
나는 키득키득 웃음이 나왔다. 윤이 형은 그야말로 쌍팔년도에나 썼음직한 이상한 속어를 거침없이 뱉어놓는 버릇이 있었는데, 이상한 것은 듣는 사람이 전혀 부담감이 없다는 거였다.
“짜샤. 형이 물 건너다니다가 깔치 한 개 삼삼한 거 봐 뒀는데… 나한테는 쪼까 과분하거덩.”
“그래서?”
나는 주무르던 석고에서 손을 떼며 담 배 한 대를 뽑아 물었다.
“내가 그 가스나 짝을 찾아 줄라꼬 한참 해골을 굴렸는디, 마 정수민이 니가 딱 걸려뿟다.”
“형도 참…”
나는 윤이 형의 느닷없는 소개팅에 피식 웃음이 나왔지만, 미상불 그 날 저녁 특별한 일도 없었고 또 오랜만에 좋아하는 선배랑 소주 한 잔 마시고 싶은 생각에 목구멍이 근질거려 왔었다. 그가 다그쳤다.
“니, 우짤긴대?”
“거 뭐, 깔치고 넙치고간에 그건 나중 일이고 그냥 형이랑 쐬주 한잔이나 할랍니다. 어디로 갈까요?”
(계속)


손용상
▶ 소설가 / 경남 밀양 출생. / 경동고, 고려대 사회학과 졸업
1998년 도미.
▶ 조선일보신춘문예 당선(1973), 한국문화예술신인상, 에세이문학신인상, 한국평론가협회동포문학상, 미주문학상, 고원문학상, 재외동포문학상(시부문), 해외한국소설문학상 등 수상.
▶‘그대속의 타인’‘따라지의 꿈’ ‘코메리칸의 뒤안길’ ‘토무(土舞) 등 장·단편 소설집과 에세이 칼럼집(우리가 사는 이유) 및 운문집(天痴,시간을 잃은) 등 20여권 출간.
▶ 현 미국 텍사스 달라스 거주
글로벌 한미 종합문예지‘한솔문학’대표
▶ 이메일: ysson060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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