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22/2021

코리아월드

휴스턴 코리아월드 주간신문

그런데 왜…?
윤여경은 느닷없이 카미유 클로텔을 끄집어냈을까…수민은 문득 잠깐 별거중인 아내 생각을 접으며 상념에서 돌아왔다. 그리곤 그녀가 따러 준 술잔을 저도 모르게 한 모금에 비워버렸다. 그리곤 냅킨으로 잔 언저리를 닦아낸 후 여경에게 다시 잔을 건넸다
“뭘 그리 골똘하게 생각해요?”
여경이 가볍게 그가 내민 잔을 받으며 물었다.
“아, 아니 그냥….” “그 여자? 로댕의 연인을 생각 했나요?”
“………”
수민은 그냥 애매하게 웃었다. 여경이 순간 고개를 갸웃하다가 왠지 시니컬하게 웃으며 연민의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불쑥 내뱉듯 말했다.
“수민씨는, 그들의 사랑 얘기를 들으면… 짜증나지 않던가요?”
“…………?”
“저는요, 로댕이란 우유부단한 인간 때문에 천재를 가진 카미유 클로텔이 결국은 망가져버린 것에 분노를 느끼고 있거든요.”
“아, 예…”
수민이 잠깐 당황하며 우물거리자 여경은 정말 화가 난 듯 한 얼굴로 마치 시비를 걸 듯 수민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저도요, 파리에 있을때 여러 미술관을 섭렵하면서 혼자 상념에 젖곤 했어요. 다른 건 모르겠어요. 다만 로댕과 그의 연인에 대한 얘기를 접했을 때, 그리고 그 여자의 혼이 담긴 작품을 대했을 때… 저는 로댕보다는 오히려 그 여자의 작품이 더 가치 있게 평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야, 뭐…, 서로의 작품세계가 다를 수도 있으니까 평가도 다를 수 있겠죠?”
수민은 일순 그녀의 의견이 일리가 있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마치 그가 존경하는 스승을 공연히 깎아 내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마음이 다소 언짢아졌다. 그의 우물거리는 모습에 순간 여경이 술잔을 탁! 탁자에 내려놓았다. 그녀는 우습게도 팔 소매를 걷어 부치고 막 싸움을 시작하려는 아줌마 같은 표정을 지었다.

“수민씨 이거 알아요?” “…….?”
“로댕이 정말 그녀를 목숨처럼 사랑했다면, 후일 그녀가 정신병동에서 최후를 맞도록은 하지 말았어야죠. 안 그래요?
그리고 그 원인이 테마가 똑 닮은 작품 때문이었다면 백 번 로댕이 그녀를 앞세우고 자기 작품을 발표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해요.”
“아, 클로텔의 사쿤델라…!
수민이 혼잣말로 중얼거리자 그때 허윤이 끼어들었다. 그러면서 그는 느닷없이 히말라야 등반 원정대의 얘기를 꺼냈다. 아주 오래 전에 들었던 전설 같은 얘기였다.

얘긴즉, 당시 원정대가 악천후로 정상정복을 실패하고 하산하는 길에 대원 두 명이 크레파스에 빠져 목숨을 잃었는데 도저히 그 시신을 가져올 수가 없었다. 그래서 눈물을 머금고 일단 철수했다가 그 이듬해인가 그들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다시 팀을 짜서 그 곳에 갔다. 결국 한 사람은 영영 찾을 수가 없었고 나머지 한 명만 그 시신을 찾아 그 자리에 돌무덤을 만들어 안장시킨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시신 수습과정에서 일 년 적 죽은 대원의 모습이 그냥 냉동된 상태로 옛날과 똑같은 표정으로 살아있어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감동을 자아내게 했다.
허윤은 그때 그 장면의 기사를 읽다가 문득 남녀가 사랑을 나누다가 그대로 얼어버린다면 그 절정의 순간의 표정이나 몸짓들이 몇 만 년이 지나더라도 생생하게 살아있지 않을까 생각 했다는….엉뚱한 기억을 소환했다.
“형님도 참…… 무슨 엽기 시리즈 하시나요? 잘도 갖다 붙이십니다.”
수민이 피식 웃으며 그에게 술잔을 건넸다. 그러나 허윤은 정색을 하며 오히려 그에게 퇴박을 주었다.
“이봐라 수민아! 니는 내 얘기 듣고 뭐가 팍 오는 게 없냐? 너…옛날에 무슨 만화더라……아 그래! 아기공룡 둘리! 그 만화 본 적 있냐?”
“에? 뭔 만화?”
“그 만화에 보면 둘리가 수 만년 적에 빙산 속에 갇혀 있다가 그 모습 그대로 깨어나서 온갖 귀여운 짓 다하고 돌아 댕기는 거……니는 읽은 적 없나?
“난 그 만화 본 적 있어요!” 이번엔 여경이 끼어들었다. 그리곤 장난기 없이 중얼대듯 말을 이었다. “그래요, 난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네…… 사랑을 나누다 그대로 얼어버린다? 그러고 몇 만 년이건 몇 억년이건 그 모습 그대로 살아있다? 이봐요, 수민씨! 그건…로댕의 조각 작품보다 더 생생하지 않을까요?”
수민을 향한 윤여경의 눈동자가 마치 꿈을 꾸는 듯 했다. 수민은 적이 당황했지만, 그 역시 금방 그녀의 생각이 그대로 전달되어와 속으로 잔잔한 전율이 일었다.

허윤이 장황하게 뱉어낸 자신의 “진짜배기 사랑”에 대해 더더욱 열을 올리며 떠벌이기 시작헀다. “나는 말예요, 언젠가 캐나다 록키 마운틴에 관광을 갔다가 그곳의 만년 빙하를 본 적이 있거덩요. 그 때 나는 그 곳에 멈춰 서서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내게 정말 좋은 사람이 있다면, 그러고 그 사람과 함께 죽을 수만 있다면 같이 묶어서 빙하 속으로 녹아들 수 있었으면… 하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함께 사랑을 나누면 그 열기로 얼음을 녹을 수 있을 것이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그 속으로 스며들어갈게 아니겠냐? 그리고 다시 그대로 얼어버리면 그 모습 그 표정들이 생생하게 살아있어 훗날 모든 사람들의 전설이 되지 않겠냐? 이런 생각을 했었지요. 여경씨, 안 그래요? 둘이서 함께 얼음 속으로 녹아들 수 있는 사랑이라면, 그게 진짜배기 사랑이 아닐까요?”
허윤은 제 풀에 흥분한 듯 목소리마저 떨리고 있었다. 장난처럼 시작된 분위기가 이상하게 가라앉으며 우습게도 숙연함마저 감돌고 있었다. “그러네요…… 로댕의 키스보다도 더욱 생생한 표정으로 살아난 수 있겠네요.” 여경이 그런 장면을 상상하는 듯 잠시 숨을 멈추고 있다가 한숨 쉬듯 혼자 중얼거렸다.



손용상
▶ 소설가 / 경남 밀양 출생. / 경동고, 고려대 사회학과 졸업
1998년 도미.
▶ 조선일보신춘문예 당선(1973), 한국문화예술신인상, 에세이문학신인상, 한국평론가협회동포문학상, 미주문학상, 고원문학상, 재외동포문학상(시부문), 해외한국소설문학상 등 수상.
▶‘그대속의 타인’‘따라지의 꿈’ ‘코메리칸의 뒤안길’ ‘토무(土舞) 등 장·단편 소설집과 에세이 칼럼집(우리가 사는 이유) 및 운문집(天痴,시간을 잃은) 등 20여권 출간.
▶ 현 미국 텍사스 달라스 거주
글로벌 한미 종합문예지‘한솔문학’대표
▶ 이메일: ysson060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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