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05/2021

코리아월드

휴스턴 코리아월드 주간신문

(정년 퇴직한 남편이 원인이 되어 생기는 병)

기대 수명이 60세 이었는데 이제는 100세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노인들의 새로운 풍속도이다. 자식들을 다 키워 놓고 이제는 자식들의 결혼과 각종문제를 다 해결하였으니 4~50년 이상 함께 산 노부부들이 남은 여생을 홀로 상대방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 편안한 노후를 보내며 살아가고 싶다는 것이 황혼이혼의 명분이다. 졸혼(卒婚)은 부부간의 성격이 맞지 않는다고 이혼을 하는 것 보다는 늙어 남은 제2의 인생을 이혼하지 않고 부부관계를 유지하면서 남은 삶을 상대방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 편안한 노후를 보내며 살아간다는 신속어로 2004년부터 일본에서 일기 시작한 풍속도다. 최근 부원병(夫源病) 은 “생식과 사냥의 임무가 끝난 늙은 수컷은 가족에 짐이 된다”는 만고 불변의 원칙의 풍속도가 이제 서서히 한국에서도 일고 있기 때문이다.

“동물의 세계” 와 “인간의 세계가” 별반 다르지 않다. 늙은 남자가 가정에서 살아가려면 사냥은 못하더라도 취사와 청소 등 가사는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시대에 살고 있다. 밥을 하고,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하고, 분리수거도 하고, 음식물 쓰레기도 버리고, 가정이 편안하게 존속되려면 남녀가 어느 정도 가사분담을 해야 한다는 말인데…! 생각으로는 납득되어도 아직까지는 실천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은 것 같다. 좀 더 늙으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일본 사람들은 최근에 부원병 이라는 희한한 병명을 지어냈다. 정년 퇴직한 남편이 원인이 되어 생기는 병이라고 한다. 은퇴한 남편이 집에 눌러 앉아서 시시콜콜 참견하고, 삼시세끼 밥 차려 달라고 하면 대개의 부인들은 말 다툼을 하거나 속병이 든다. 남편 때문에 생긴 이 속병을 부원병 이라 부른다. 남자들의 평균 수명이 50세 시대에는 이런 병이 없었다. 전쟁, 전염병, 기근이라는 “3재(災)가 없어지면서 인류는 여태껏 경험해보지 못한 장수시대에 돌입하였다.

동물의 세계를 살펴보자. 아프리카 사자 무리의 습성을 보면, 수 사자는 제왕의 자리에서 내려오자 마자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관례다. 젊은 수 사자의 도전을 받고 무리에서 쫓겨나면 혼자서 광야를 헤매다가 굶어 죽는다. 평소 암사자가 사냥해 오는 먹이를 편안하게 먹다가 집단에서 추방되어 혼자가 되면 사냥이 어려워 진다. 늙은 수 사자는 이런 방식으로 가차없이 도태된다. 이렇게 생태계는 비정하다.

인도의 힌두교도 옛날의 풍습을 보자. 50세가 넘은 남자는 임서기(林棲期) 로 살게 하는 관습이 있었다. 그 동안 가족을 부양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 했으므로 50세부터는 가정을 떠나 숲속에서 혼자 살라는 그들만의 규율이자 지침이다. 그래서 동네 뒷산의 원두막 같은 데서 혼자 거지같이 살거나 아니면 지팡이를 짚고 떠돌이 생활을 한다. 그러다 보니 바라나시에 도착해서 장작으로 화장하고, 뼛가루를 갠지스 강에 뿌리는 것이 그들의 소원이다. 자기를 되돌아보고 수행을 하라는 종교적 의미도 있지만 생식과 사냥의 임무가 끝난 늙은 남자는 가정에 짐이 된다는 현실적 의미도 내포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한 사례를 보자. 고건 전 총리의 부친이 대학총장까지 지낸 “청송(聽松) 고형곤” 박사다. 학교를 퇴직한 이후로 청송은 집을 떠나 정읍 내장산으로 혼자 들어갔다. 조그만 토굴 같은 집에서 혼자 밥 끓여 자취하면서 지냈다고 한다. 물론 가족이 반찬과 먹을 거리를 가지고 왕래는 하였다지만 청송은 인생의 말년을 내장산의 적막강산 속에서 보냈던 것이다.

임서기(林棲期). 은퇴 후 명상, 수행, 고행하는 시기가 현실적으로 실천하기 어렵다면 어떤 대안이 있을까? 취사기가 대안이다. 부엌에서 앞치마를 걸치고, 밥과 설거지 등 가사일을 하는 것이 취사기(炊 事期)다. 돈 많이 벌어 놓은 친구들은 큰 소리 치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 고로 새겨야 할 격언(?)도 많다. *(1)인명재처 (人名在妻): 사람의 운명은 아내에게 있다. *(2)진인사대처명 (진인사대처명): 최선을 다한 후 아내의 명령을 기다리라. *(3)수신제가(修身齊家) :손과 몸을 쓰는 일은 제가 하겠습니다. *(4)처화만사성(妻和萬事成) : 아내와 화목하면 만사가 순조롭다. *(5) 순처자(順妻者) : 아내와 친하면 흥하고, 역 처자는 망한다. *(6)아내(WIFE)에게 순종하면 삶이(LIFE)이 즐겁지만 아내의 말을 거스르면 칼(KNIFE)을 맞는다. 은퇴 후에, 부원병이 생기지 않게 마누라에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 말년에 팽 당하지 않으려거든 취사기 임무를 성실히 수행해야겠다. 말년의 남자들이여… 파이팅…….???!!! (모셔온 글에서).

정(精)은 쌓아야 하는 것이다. 시간이 흐른다고 부부의 정이 절로 생겨나지 않는다. 부부가 함께 죽을 때까지 맞붙들고 하나씩 하나씩 얹고 또 얹어야 하는 것이 미운 정, 고운정, 살아온 정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부부가 함께 살아온 정인 것이다. 남은 노후를 편하게 사는 것이 부부의 정이 아닌가? 결혼의 행복은 부부가 함께 만들어 온 것 아닌가…!!




최수철
조선일보 휴스턴 지국장
전 동아일보 휴스턴 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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