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22/2021

코리아월드

휴스턴 코리아월드 주간신문

일단 베낀 후 자기 것으로 재창조하는 라파엘로

라파엘로(Raffaello Sanzio 1483-1520)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와 함께 르네상스 예술의 3대 거장으로 꼽히고 있다. 그는 다빈치나 미켈란젤로가 지닌 천재성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의 습득력은 남달랐다. 그들의 장점을 고스란히 흡수, 자신의 타고난 재능에 섞어 화폭에 담았다. 그는 두 예술가와는 달리 오직 회화에만 올인 했고. 그림뿐 아니라 인물도 좋고 인성 또한 좋았다. 괴팍하고 까탈스럽고 칙칙한 성격의 두 선배와는 달리 예의바르고 상냥하고 사교적인 젊은이로 인기를 얻었으니 미켈란젤로에게는 당연히 질시의 대상이 되었다.
그는 북부 이탈리아 우르비노에서 궁정화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때문에 어려서부터 미술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었지만 11살에 부모를 잃는 바람에 숙부의 손에서 자랐다. 숙부는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16세 때 페르지노의 공방으로 보낸다. 거기서 미술의 기본을 익힌 후 당시 다빈치와 미켈란젤로가 웅지를 틀고 있는 피렌체로 간다.

4년 동안 그곳에 머물면서 두 거장의 작품들을 공부한다. 다빈치의 안정된 구도와 우아하고 은은한 채색기법을, 미켈란젤로 특유의 웅장함, 해부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살아 움직이는 듯한 역동성을 지닌 인물 묘사, 그리고 프라 바르톨로메오 특유의 종교화 제작 기법을 터득하고 이 모든 지식을 자기 작품에 넣어 새롭게 재창조, <아테네 학당>이라는 걸작을 탄생시킨다.
그 당시 서양 미술계에는 그림의 주제에 따라 등급이 매겨졌다. 우선 화가의 상상이나 생각을 화폭에 담아내는 주관식 예술이, 있는 그대로를 보고 그리는 객관식 예술보다 한 수 위였다. 주관식 예술 중에서도 성경이나 신화 또는 역사의 한 장면을 주제로 그린 역사화가 최상급. 듣거나 읽은 이야기를 성스럽고 품위있게 재구성해서 그려내는 작업으로, 그 당시 회화는 문학의 연장선에 놓여 있는 예술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그 다음 등급이 초상화. 이 역시 모델의 인격이나 개성을 얼마나 많이 화폭에 담아냈는지가 중요했다. <모나리자>가 그래서 그리 유명한 걸작이 된 것이리라.

그 다음 등급으로는, 보이는 아름다움을 그대로 화폭에 옮기는 객관식 예술로 일상을 그린 장르화, 자연을 그린 풍경화, 주로 네델란드 화가들이 잘 그린 동물화, 그리고 생활도구나 일상용품을 그린 정물화 순으로 등급이 매겨졌다. 이 기준으로 보면 세 거장 중에서도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이 가장 돋보인다. 그래서 그를 르네상스 미술의 완성자로 평가하는가 보다. 참고로 이 서열 매김은 인상파의 탄생으로 소리없이 무너졌다.
그 당시 교황 율리우스 2세는 교황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아비뇽 유슈>를 극복하고 로마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 노력한 선배 교황의 의지를 이어받은 몸. 미술과 건축을 통하여 로마의 위용을 되찾아 세계의 머리(Caput mundi)로 우뚝 서기로 결심하고 피렌체의 예술의 장인들을 불러들였다. 그 부르심을 받은 인물들은 1506년부터 베드로 성당 재건축을 맡은 부라만테와 1508년부터 시스틴 성당의 천장화를 맡은 미켈란젤로였다. 그리고 다시 2년 후인 1510년에는 20대 중반의 어린 라파엘로가 합류, 교황의 도서실 겸 접견실로 사용하는 방에 <아테네 학당>을 그리게 된다.

라파엘로의 베끼기 작전은 이 그림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라파엘로는 브라만테와 동향으로 그의 입김으로 교황의 부르심을 입은 것. 그래서인지 그는 베드로 성당의 설계도를 갖고 있었다. 물론 허락은 받았겠지만 아테네 학당의 그림 배경은 그 설계도가 그대로 화폭에 담겨 진 것.
총 58명의 그리스 석학들이 그려 진 이 벽화는 인물 배치의 구도는 물론 미켈란젤로 특유의 해부학적 인체구조에서 영감을 얻은 듯 각 사람의 특성을 역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중앙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걸어나오면서 대화하고 있다. 플라톤은 그가 평소에 존경하던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모델로 삼았다고.
그들의 손에 든 책과 손가락의 방향으로 보아 이런 대화를 한 것 같다. 먼저 스승인 플라톤이 ”이보게, 자네는 그림자에 불과한 현실 세계에만 몰두하고 있어. 그렇지 말고 지성의 눈으로 하늘을 보게나. 실체인 이데아가 보이지 않는가” 하고 말문을 여니까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가 “선생님,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현실 세계부터 탐구해 나가야지요.” 했을까. 아님 제자가 먼저 “선생님, 우리는 여기서 행복을 누리는 삶을 추구하는데 그 행복은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 얻을 수 있다니까요. 습관과 교육으로 완전한 덕을 갖추기만 하면요.” 라고 하니까 선생님은 “아리야, 난 이리 오래 살면서 한가지 깨달은 것이 있단다. 아무리 박식해도 우리 인간의 지성과 이성은 한계가 있어요. 그러니 너도 이제는 초월적인 실제, 이데아가 있음을 인정하려무나.”였을까?

이들이 나오는데 테스형이 빠질 수는 없지. 평소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세월을 보내던 소크라테스는 이 그림에서도 왼쪽에 쑥색 옷을 입고 왕이 되기 전의 알렉산더를 위시하여 많은 제자들과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그리고 왼쪽 제일 앞에서 턱을 괸 채 홀로 고독을 즐기고 있는 헤라클리이토스. 만물은 흐르기 때문에 같은 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 또는 ‘인간의 성격은 인간의 운명’이라고 해서 후에 프로이드에게 큰 영향을 끼친 철학자. 성격상 라파엘로와 친히 지내지 못했던 미켈란젤로를 모델로 그렸다고. 이 유명한 그림에 라파엘로 자신이 빠질 수 없지. 오른쪽 앞에 보면 양손에 별이 빛나는 천구와 지구 본을 들고 있는 조로아스터 옆에 검은 모자를 쓴 미모의 젊은이가 라파엘로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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