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22/2021

코리아월드

휴스턴 코리아월드 주간신문

가장 친절한 사람 VS 앤비디아

사람이 그 의사를 표현하는 가장 주된 방법이 말이며, 그래서 말이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고사에 말로 사람을 죽인 예도 많고, 말로서 한나라를 위기에서 구출한 일이 있는가 하면, 거꾸로 평지풍파를 일으킴으로써 파국으로 몰아 넣는 일도 없지 않은 것이다.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을 수도 있지만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질 수도 있다.

2004년 3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TV로 생중계된 기자 회견에서 대우건설 사장처럼 좋은 학교를 나오고 크게 성공하신 분이 시골에 있는 별 볼일 없는 사람에게 가서 머리 조아리고, 돈을 주고 하는 일이 이젠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자신의 큰형인 노건평씨를 시골에 사는 순박한 사람처럼 표현하고, 대우의 남사장은 파렴치한 지식인으로 표현하여 결국 남사장은 한강물에 투신해 자살하는 비극이 발생했다. 노무현씨의 판단이 너무 일방적이고 그 의사를 표현하는 주된 방법인 말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미국 네바다 주 사막 한 복판에서 낡은 트럭을 몰고 가던 ‘멜번 다마’ 라는 한 젊은이가 허름한 차림의 노인을 발견하고 급히 차를 세웠습니다. 그리고는 “어디까지 가십니까? 타시죠! 제가 태워 드릴께요.” 라고 말했습니다. 그 노인은 “고맙소, 젊은이! 라스베가스까지 태워다 줄 수 있겠소?” 하고 부탁을 했습니다. 어느덧 노인의 목적지인 라스베거스에 도착했습니다. 불쌍하고 가난한 노인이라 생각한 그 젊은이는 25센트를 노인에게 주면서 말했습니다. “영감님 차비에 보태세요” 그러자 노인은 “참 친절한 젊은이로구먼, 명함을 한 장 주게나!” 젊은이는 무심코 명함을 건네주었습니다. 명함을 받아 들고는 그 노인은 ‘멜번 다마’! 고맙네, 이 신세는 꼭 갚겠네, 나는 하워드 휴즈라는 사람이라네!”

얼마의 세월이 흘러 이 일을 까마득히 잊어버렸을 무렵 기상천외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세계적인 부호 하워드 휴즈 사망”이란 기사와 함께 하워드 휴즈의 유언장이 공개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워드 휴즈는 영화사, 방송국, 비행기 회사, 호텔, 도박장 등 50개 업체를 가진 경제계의 거물 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의 유산 중 16분의 1을 멜빈 다마에게 증여한다는 내용의 유언장에 기록 되어 있었습니다. 멜빈 다마란 사람은 누구인가?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다행히 유언장 이면에는 휴즈가 적어놓은 멜빈 다마의 연락처와 함께 자신이 일생 동안 살아 오면서 만났던 “가장 친절 한 사람”이란 메모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 휴즈의 유산 총액이 250억 달러 정도였으니 16분의 1은 최소한 1억 5000만 달러이고 이것을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대략 2천억 원 가량이었습니다. 25센트의 친절을 금액으로 환산해 놓은 것이라 할 것입니다.

이 글은 우리에게 두 가지 교훈을 보여줍니다. 친절의 가치는 이렇게도 클 수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많은 재산을 그냥 두고 이 세상을 떠난다는 것입니다. 실제 휴즈가 남긴 마지막 한 마디 말은 “Nothing, Nothing” 아무 것도 아니야, 아무 것도 아니야” 그는 이 말을 반복하면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옮긴 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척박한 이민 삶 속에서도 견딜 수 있는 힘은 무엇인가? 주어진 현실에 감사하며 고마움을 찾는데 있다.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고마운 것은 고맙다는 삶의 원숙함을 배우고, 친절의 가치는 어느 순간 이렇게 클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항상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남미 특히 멕시코의 민속질환으로 분류 된다는 병명은 “엔비디아(Envidia)” 의학적으로는 극심한 부러움, 질투, 욕망 등에 의한 질환이다. 남이 잘되는 것을 보고 배 아파하는 것도 병이라면 병이지만 흥미를 끌만한 병이 아니다. “엔비디아”는 사촌이 땅을 사면 배탈이 나거나, 남이 잘되는 것을 배 아파하는 부러움과 질투를 내는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증세에 초점을 맞춘다. “엔비디아”는 가슴앓이, 근심, 홧병, 고열, 감기, 소화불량, 깜짝 놀라기, 등의 증세를 보인다. 왜? 이처럼 남이 잘되는 것을 보고 배 아파할까? 왜! 잘된 것을 보고 질투와 시기심으로 몸이 아파야 하는가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여하튼 몸이 아픈 것은 사실이다. “앤디비아”는 사회적, 집단심리학적, 정신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는 질환일 것이라는 주장만이 있을 뿐이라 한다. 발병 경로는 잘 모르지만 환자는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 이 병의 어두운 면이다. 치유가 어렵다는 뜻이다.

여기서 나눔의 일종의 민간요법으로 치유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멕시코 사람들은 유난히 인심이 좋고 주위 사람들과 나누기를 좋아한다. 자기 것이라도 넉넉하지 않더라도 이웃과 함께하는 우리들의 미풍양속과 흡사하다. “엔비디아” 는 앓는 사람과 고칠 수 있는 사람이 동일한 병이다. ”엔비디아” 는 사회적, 집단심리학적, 정신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는 질환일 것이라는 추정만 있을 뿐이라 한다…




최수철
조선일보 휴스턴 지국장
전 동아일보 휴스턴 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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