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22/2021

코리아월드

휴스턴 코리아월드 주간신문

종교로 시작해서 땅따먹기로 마감한 30년 전쟁

종교로 시작해서 땅따먹기로 마감한 30년 전쟁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은 1530년 독일 안에서 가톨릭과 한 차례 전쟁을 치르고 1555년에 아우구스부르크 회의에서 루터파의 신앙의 자유는 일단 보장되었다. 비록 신앙의 자유가 개개인이 아닌 영주에게 주어진 것으로, 영주가 가톨릭이냐 루터교냐의 결정권을 쥐고 있는 반쪽짜리 자유였지만 뭐, 그런데로 견딜만 했다. 적어도 이단 취급은 받지 않으면서 신흥 세력이 천년 세력인 가톨릭과 공존할 수 있음에 만족하면서.

그런데 한 세대 후에 나타나 날로 세력을 키우고 있는 칼뱅파에 대한 태도는 애매했다. 이들에게도 루터파와 같은 신앙의 자유를 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게다가 같은 신교이면서도 루터파가 칼뱅파에게 보내는 시선도 곱지만은 않았다. 이러한 갈등은 팔츠 선제후인 프리드리히 5세를 중심으로 개신교 연합이 결성되고 뒤이어 바이에른 대공 막시밀리안을 중심으로 가톨릭연맹이 결성, 1618년부터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이 체결될 때까지 모두 네 번에 걸친 격돌이 있었다. 역사는 이를 <30년 전쟁>이라 한다.

이 전쟁은 오스트리아 공작 페르디난트 2세가 보헤미아 (지금의 체코)의 왕이 되면서 시작되었다. 페르디난트는 합스부르크 가문 출신인데다 냉엄한 예수회 교육까지 받았기 때문에 개신교를 혐오스런 이단으로 보는 가톨릭 신자. 왕이 되자마자 당연한 듯 신교를 탄압했다. 이에 반해 보헤미아는 개신교 귀족들이 지배하는 신교국. 탄압 조치에 반발한 보헤미안들은 프라하 왕궁까지 쳐들어가 총독과 비서를 번쩍들어 창밖으로 던져 버렸다. 그런 후 팔츠 선제후 프레드리히 5세를 보헤미아 왕으로 추대하기에 이른다. 참고로, 창밖에 던져진 두 고급 관리는 다행히 퇴비 더미에 떨어져 목숨은 건졌다고.

이래서 시작된 전쟁은 가톨릭 측의 승리로 일단락되어 보헤미아는 이 때부터 1918년 1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오스트리아의 식민지가 되었다. 1차 승리에 탄력을 받은 페르디난트 2세. 이 기회에 개신교를 싹쓸이 할 기세였다. 이를 막기 위해 신교 국가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먼저 나선 나라가 덴마크이기 때문에 2차 전쟁은 덴마크전쟁(1625-1629)이라 한다. 아, 1차 보헤미아 팔츠 전(1618-1620)은 프라하 근처 하얀산 빌라호라 주변에서 일어났다 하여 백산전투라 하고.
덴마크의 크리스티안 4세는 당시 견제 대상이던 스웨덴의 독일 진출도 막을 겸 신앙도 지킬 겸 영국과 네델란드의 지원을 받으며 출정, 황제군과 맞섰다. 그러나 황제군의 총사령관으로 발탁된 발렌슈타인을 꺾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발렌슈타인은 보헤미아의 하급 귀족 출신으로 본래는 신교도였으나 대학생 시절 예수회와 접촉하면서 구교로 개종했다. 그 후 부자 미망인과 결혼했고 결혼 5년 만에 부인이 죽자 유산으로 갑부가 된다. 마침 1차 전쟁 때 뺏은 신교도들의 땅이 헐값에 나오자 그는 그 땅을 아예 덩어리째 매입, 그곳에 군수공장을 차려 유럽 최고의 사병 집단을 확보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터진 2차 전쟁. 이 사병 집단을 데리고 황제를 위해 싸웠기 때문에 그의 사병은 전후 신성로마제국의 정규군으로 승격된 것. 뿐만 아니라 자신은 공작이 되어 이미 가진 재력과 군사력 위에 권력까지 거머쥔다.

그 덕에 2차 덴마크와의 전쟁에서도 승리한 페르디난트 2세. 이번에는 발트해를 향해 진격한다. 이에 위협을 느낀 스웨덴의 구스타프 아돌프는 프랑스의 암묵적인 지원을 받으며 전선에 나선다. 이것이 3차 전인 스웨덴 전쟁(1630-1635)이다. 발렌슈타인은 당시 귀족들의 질투의 대상이 되어 사령관직에서 물러났기 때문에 틸리가 총사령관으로 출전한다. 그러나 구스타프 아돌프는 그를 전사시키고 신교측에 첫 승리를 안겨준다. 그런 후 자신도 전사한다. 발렌슈타인은 전사한 틸리 대신 투입되어 싸웠었으나 끝내는 황제측에 의해 암살된다.

마지막 전쟁은 구스타프 아돌프를 잃고 고립된 스웨덴을 돕기 위해 프랑스가 직접 나선 스웨덴-프랑스 전(1635-1648). 본래 구교국가로서 국내에서 위그노 전쟁까지 치른 프랑스가 국제전에서는 신교파를 돕다니! 종교로 시작한 <30년 전쟁>이 막판에 가서는 땅 따먹기 식으로 변질되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된다. 유럽에서 힘을 키우는 합스브르크 왕가를 견제해 왔지만 같은 가톨릭국이기 때문에 그 동안 어쩌지 못했던 프랑스. 그러나 이번에는 과감하게 신교파와 손을 잡아 주고 에스파니아를 눌러 승전국이 된 것.

30년 동안 지루하게 치른 이 전쟁은 베스트팔렌 조약에 의해 종식된다. 다음은 참전국들의 손익계산서: 독일은 황제, 8선제후, 96제후, 61자유시의 연합체로 남으면서 개인에게도 종교의 자유가 주어졌다. 네델란드와 스위스의 독립이 정식으로 승인되었고 브란덴부르크 선제후(프러시아)가 힘을 키우게 된다. 스웨덴은 발트해 연안의 땅을, 프랑스는 알자스 지방과 라인강 왼쪽 연안의 땅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 때 빼앗은 알자스지방은 1871년 보블전쟁 때 다시 돌려주게 되는데 알퐁소 도어테의 그 유명한 <마지막 수업>의 내용이 된다. 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후에 하겠지만 이 땅의 본래 주인은 독일어를 쓰는 게르만의 땅이란 점을 기억하자.

이 조약으로 인해 유럽은 종교적 정치적 문화적 변화를 맞보게 된다. 신성로마제국은 30년간 북새통에 국토가 초토화 되었고 유명무실한 존재로 전락한다. 에스파니아 역시 더 이상 유럽의 강대국이 아닌 보통 국가로 전락. 보헤미아는 어떤가. 가톨릭에 반기를 들고 전쟁을 일으킨 근원지였는데 결과는 도로 가톨릭이 지배하는 국가가 되었다. 수많은 보헤미안들이 집시가 되어 방황하게 된다. <보헤미안 랍소디>를 부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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