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24/2021

코리아월드

휴스턴 코리아월드 주간신문

섬에서 태어나 대륙을 호령하고 황제가 된 나폴레옹

섬에서 태어나 대륙을 호령하고 황제가 된 나폴레옹

코르시카 섬. 본래는 제노바 공화국 영토이지만 1769년 나폴레옹이 태어나기 1년 전 프랑스에 팔린다. 나폴레옹의 아버지는 이 섬의 독립을 위해 싸우다 생각을 바꿔 프랑스 편에 서면서 말단 귀족 작위를 얻게 된다. 그 당시 코르시카에서는 매국노 취급을 받았겠지만 그 때 그가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면 세계 제패를 꿈꾸는 풍운아, 걸출한 영웅 나폴레옹은 세계사에 등장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 때에는 귀족의 자제만이 사관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덕에 나폴레옹은 어려서 프랑스로 유학한다. 육군유년학교를 거쳐 파리의 군사학교로. 그런데 서울에서 제주도 사투리가 통하지 않듯이 파리에서 코르시카 사투리로는 동급생들과 대화 자체가 불가능해지자 자연스럽게 왕따가 된다. 그는 그 소외감을 독서로 간단하게 날려 보낸다. 과연 나폴레옹! 아마도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을 읽으며 자신의 미래를 상상했을 것이고 룻소의 계몽주의 서적을 읽으며 자유와 평등의 진가를 발견했을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그의 독서 습관은 전투 중에도 멈출 줄을 몰라 일생을 통틀어 8천여권을 읽었다고. 이쯤 되면 전쟁광이라기 보다는 독서광이라 불러야.
그가 사관학교를 졸업할 즈음 프랑스 정국은 혁명을 맞게 된다. 혁명군이 그에게 맡긴 첫 임무는 왕당파 때려 잡는 일. Toulon항에서 왕당파가 불러들인 영국군을 쫓아내고 곧이어 파리 시내로 들어가 무려 1,400 여명의 반혁명 세력을 사살하며 무자비하지만 완벽하게 진압하면서 상사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얻는다. 이 때 두 아이가 딸린 과부이자 상사의 애인인 조세핀을 만나 결혼한다. 그리고 곧바로 원정군의 총사령관이 되어 이탈리아로 떠난다. 가는 곳마다 승리를 거두면서 그곳의 그림, 조각 등 국보급 예술품 수 백 점을 챙겨 프랑스로 돌아왔다. 이런 전리품들은 훗날 루브르 박물관의 명성으로 이어지고.
의욕 같아서는 영불해협을 당장 건너고 싶지만 넬슨 제독의 제동에 걸려 건널 수가 없었다. 차선책으로 택한 것이 이집트를 점령해서 영국과 인도의 무역을 방해하는 것. 그래서 3만8천의 군대를 이끌고 이집트로 향한다. 이 때 군인뿐 아니라 기술자 문화재 연구가 등 175명의 학자들도 대동한다. 이집트의 유물들을 식별하여 왕창 챙겨 오려는 생각이었겠지. 1798년 카이로 입성까지는 순조로웠다. 하지만 영국 함대가 지중해에서 프랑스 함대를 격파, 나폴레옹 군대는 이집트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고 1801년 알렉산드리아 전투에서 지는 바람에 바리바리 챙긴 유물들은 몽땅 영국에게 빼앗기고 만다.
그 중의 하나가 그 유명한 Rosetta Stone. 나폴레옹 원정군이 알렉사드리아 동쪽에 위치한 로제타(지금은 Rashid) 마을에서 요새를 쌓다가 글자 비슷한 것이 새겨진 현무암을 발견한다. 이것이 기원전 196년에 이집트 신관들이 프톨레마이오스의 공덕을 찬양한 글이라는 것을 후에 발견한다. 로제타 스톤은 영국군에게 빼앗겨 현재 대영박물관에 있고 프랑스는 그 때 석고로 떠 두었던 사본만 보관 중이다.
파리로 돌아온 나폴레옹은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 강력한 중앙집권 정부를 만든다. 그리고 법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하고 종교의 자유가 주어지며 재산을 보호받을 권리 등이 골자로 적힌 나폴레옹 법전을 편찬하기에 이른다. 누구나 평등이라… 뭐, 말이야 쉽지만 대대로 다져진 신분의 벽은 그리 쉽게 헐리지 않는 법.
1803년에는 미대륙에 있는 광대한 땅 루이지애나를 처분한다. 갓 독립한 미합중국은 자기 나라 크기의 프랑스령과 국경을 맞대고 있었다. 미시시피 강변에 살던 농민들은 뉴올리언스 근교를 지나며 통행세를 내야 했고 만약 프랑스가 봉쇄라도 하는 날에는 결정적인 치명타를 맞게 된다. 그래서 제퍼슨 대통령은 외교관 먼로를 프랑스로 보낸다. 먼로를 맞이한 나폴레옹은 ‘차라리 그 땅을 사시요. 천 오 백 만원 만 받을 테니.’ 한 것. 이로써 미국은 계약서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영토가 두 배로 늘어나는 행운을 얻게 되었고 이는 서부개척으로 대륙을 통합하는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의 시발점이 되었다.
영국 정복을 포기하지 못하는 나폴레옹. 영불해안에 20만 대군을 주둔시키고 훈련을 감행한다. 이를 본 영국은 망명 중인 왕당파 지도자를 프랑스로 잠입시켜 나폴레옹 암살을 시도하지만 미수에 그친다. 암살자를 처형한 나폴레옹은 이를 여론몰이에 이용했다. 이 기회에 부르봉 왕실의 복귀를 막아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보나파르트 가문이 황제가 되어야 한다는 이상한 논리를 펴는데 더 이상한 것은 이것이 국민들에게 먹힌 것. 10여년간 혁명과 전쟁에 지칠 대로 지친 국민들. 차라리 이 승승장구의 능력자에게 전권을 쥐어주고 안정을 되찾고픈 심정이었겠지. 그래서 나폴레옹은 국민 투표에 의해 당당하게 황제 보나파르트 나폴레옹1세가 된다.
1804년 노트르담 성당에서 황제 대관식이 거행되었다. 로마에서 온 교황 비오 7세가 무릎 꿇은 나폴레옹에게 왕관을 씌우기 전에 행하는 기름 붓는 예식을 치렀다. 그러나 나폴레옹의 무릎 꿇은 자세는 거기까지. 벌떡 일어나 스스로 왕관을 들어 머리에 얹었다. 그런 후 조세핀에게 황후의 관도 직접 씌워 줬다. 황제는 교황이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스스로 황제가 된다는 사실을 공표한 제스처. 이로써 유럽 역사 속에 대대로 흐르던 교황과 황제간의 기 싸움도 이제 그만이라는 제스처.
평소 나폴레옹을 지지하고 존경하던 베토벤. 때가 오면 그에게 헌정하려고 교향곡도 미리 써 두었다. 3번 . 그러나 그가 황제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몹시 실망한다. 그래서 당신도 별 수 없는 속물이라는 심정으로 제목 보나파르트에 줄을 북북 그었다. 그리고 다른 이름을 붙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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