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25/2021

코리아월드

휴스턴 코리아월드 주간신문

황제의 기를 꺾고 넬슨 제독을 전사시킨 트라팔가 해전

황제의 기를 꺾고 넬슨 제독을 전사시킨 트라팔가 해전

18세기 유럽에서는 해군장교의 위상이 높았다. 해군사관학교는 왕족이나 귀족의 자제들만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나폴레옹도 해군장교가 되고 싶었지만 신분이 받쳐 주질 않았다. 그는 코르시카 섬에서 아버지의 매국적 전향이 없었다면 포병장교마저도 될 수 없었던 코르시카 촌놈이었다. 그러나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는 그의 말대로 끝내는 황제가 되었다.
황제가 된 나폴레옹의 우선순위는 영국 본토를 침공하는 것. 이를 막기 위해 영국은 이미 항구마다 해상 봉쇄령을 내린 상태. 하지만 나폴레옹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프랑스 육군을 영국 본토에 상륙시키기만 하면 승리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영불해협 인근에 18만 대군과 2천여 척의 수송선을 배치했다. 그리고 기다렸다. 카디스에 정박중인 프랑스와 스페인의 연합함대가 오기를.
그런데 그 기다림의 틈새를 비집고 오스트리아와 러시아군이 라인강으로 진격해 오자 나폴레옹은 영국 침공을 포기하고 이미 배치한 병력으로 이탈리아를 공격하기로 했다. 그래서 연합함대가 카디스를 떠나 나폴리로 갈 것을 명령한다. 그러나 그동안 연합함대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주시하던 넬슨제독, 이들이 지브롤터 해협을 지날 무렵 맹렬한 기세로 덮쳤다. 그래서 프랑스와 영국의 해상 대결은 엉뚱하게도 트라팔가 (Trafalgar)에서 벌어진다.
넬슨(Horatio Nelson)제독이 이끄는 영국 전함은 모두 27척, 빌뇌부(Pierre Billeneuve)가 이끄는 연합군은 33척. 전함 수만 보면 프랑스와 스페인 연합군이 당연히 이겨야 하는데 결과는 그 반대였다. 영국은 배 한척도 잃지 않은 반면 연합군은 무려 22척을 잃었으니 이 손실만 보더라도 그 당시 영국 해군이 얼마나 강력했는지, 그리고 이를 이끄는 명장 넬슨의 지도력이 얼마나 탁월했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사실 프랑스에도 전쟁 경험이 풍부하고 연륜이 쌓인 해군 장교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프랑스의 본격적인 해군 육성은 태양왕 루이 14세 (1643-1715) 때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영국처럼 무역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강력한 해군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들을 양성하기 위해 황실 조선소를 만들고 270 척의 함선 건조에도 힘썼다.
하지만 1789년 혁명 때 루이 16세가 처형되면서 노련한 기술과 풍부한 경험을 지닌 해군 장교들이 처형되거나 프랑스를 등지고 망명을 떠난 상태. 그만큼 실전경험이 있는 유능한 지휘관이 부족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1804년에는 지중해 함대 사령관으로 실전경험이 있는 트레빌 제독마저 심장마비로 급사한다. 그래서 빌뇌브가 연합함대의 총지휘관으로 임명된 것. 아, 그 역시 실전경험은 있다. 나일강 해전에서 넬슨제독에게 크게 패하고 도주한 경험.
이 전투에서 영국군이 대승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연합군의 구식전법에 새롭고 기발하지만 위험하기도 한 <넬슨 터치> 전술이 먹힌 것. 도표에서 보듯이 일렬로 도열한 연합함대의 중앙을 두 줄로 돌진, 순식간에 전열을 끊고 적들을 교란시킨다. 졸지에 당한 연합함대는 제대로 응전도 해 보지 못한 채 참담히 불타버렸다. 5척이 격침되고 17척이 나포되었고 8천명의 사상자를 냈다. 이에 비해 영국은 배는 멀쩡했지만 1,600명이 희생되었고.
1,600명의 희생에는 넬슨제독도 포함되었다. 이미 이전 전투에서 오른쪽 눈과 오른 팔을 잃은 넬슨. 이번에는 어깨를 관통한 총알이 왼쪽 폐부에 박혀 동맥이 끊어지는 치명상을 입었다. 눈을 감기전에 선상에서 들리는 함성을 듣고 승리를 확신한 그는 부관에게 물었다. 적함을 몇 척이나 나포 했냐고. 15척이라는 대답이 돌아오자 숨을 헐떨이며 ‘난 20척을 예상했는데….’ 라고 했다나.
라는 유언을 남기며 생을 마감하면서 자신의 주검을 수장하지 말고 본국에 묻어달라고 부탁했다 한다. 해군의 주검을 수장하는 것이 그 당시 관습이었다고. 하지만 그 당시에는 방부제나 제대로 된 냉동처리 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그의 관에 Rum 주를 부어 부패를 방지하면서 운구했다고.
트라팔가 해전을 승리로 마무리한 영국은 장차 미드웨이 해전이 벌어지기까지의 100년간, 말 그대로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서 제해권을 완전 장악했다. 그렇다면 패배한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은? 제목은 기가 꺾였다고 뽑았지만 그리 쉽게 꺾일 나폴레옹이 아니다. 이듬해인 1806년 영국에 대한 보복이 시작되었다. 영국의 통상에 제동을 걸기 위해 대륙 봉쇄령을 내린 것.
하지만 영국은 이런 조치에 영향을 받기에는 이미 너무 커버렸다. 산업혁명으로 대량생산되는 물품을 여기저기 심어 놓은 식민지로 보낼 수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자급자족으로 버틸 수 있었다. 문제는 유럽의 다른 나라들이 피해를 입었다는 점. 이 대륙봉쇄령을 처음으로 이탈한 나라가 러시아다. 이에 대한 괘씸죄를 물어 러시아로 쳐들어 갔는데 그 때가 하필 겨울이었다. 동토의 늪에서 처참한 몰골로 되돌아오면서부터 황제 나폴레옹은 본격적으로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 Sign up
Lost your password? Please enter your username or email address. You will receive a link to create a new password via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