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25/2021

코리아월드

휴스턴 코리아월드 주간신문

패전의 원인을 적국의 발전에서 찾은 알렉산드르 II

패전의 원인을 적국의 발전에서 찾은 알렉산드르 II


크림전쟁(1853-1856) 중에 사망한 니콜라이 1세를 이어 왕위에 오른 알랙산드르 2세. 그는 반동체제를 유지하던 부왕과는 달리 계몽 군주로서 러시아 근대화를 위한 개혁을 단행한다. 적들인 연합군이 보여준 세련된 발전상에 자극받고 러시아 패배의 원인을 자국의 낙후성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이것 하나만 보더라도 그는 현명한 군주였다.

그 세련된 발전상이란 이런 것들. 영국은 산업혁명의 선두주자답게 크림반도에 세계 최초로 군용철도를 놓고 군대 및 보급물자를 신속히 운송한 것. 이들이 사용하는 무기도 러시아 군이 사용하는 활강식 머스킷보다 화력이 우세한 미니에탄을 사용한 것. 무선 전신망의 발달로 사상 최초로 투입된 종군 기자에 의해 그 날의 전황이 영국과 프랑스에 수시로 보고되고 같은 날에 전파를 타고 전국에 알려진 것. 전쟁 중에 최초로 사진이 촬영된 것. 아, 물론 사진 한장 찍으려면 포즈를 취한 채 적어도 20분 동안을 움직이지 말아야 했지만서도. 아무튼 크림전쟁은 현대식 기술이 사용된 최초의 전쟁이었다.

그래서 알렉산드르 2세는 서둘러 파리 강화조약에 서명했다. 그런 후 우선 시베리아 탄광에서 고생하고 있는 데카브리스에게 사면령부터 내렸다. 그리고 원하면 본국에 데려와 과거의 사회적 지위에 복귀시켜 주었다.

1860년에는 제 2차 아편전쟁을 중재한 댓가로 청나라로부터 연해주를 획득, 이제 러시아는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한반도와 국경을 마주보면서 동아시아 영역의 일원이 되었다. 이에 따라 조선에서는 1863년에 함경도 주민 최운보와 양응범이 두만강을 건너면서 러시아 속의 고려인 역사가 시작되었고. 이듬해에는 13가구가 이주하면서 해를 거듭할 수록 기근과 관리들의 수탈에서 벗어나기 위한 이주민은 꾸준히 늘어났다. 광대한 땅을 개발하기엔 역부족이던 러시아는 이들을 환영했다. 그래서 지신허, 연추 등지에 조선인 촌락이 형성되었고. 그러나 러시아는 한인의 부지런한 노동력을 생산적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환영한 것이었고 실제로는 해를 거듭할수록 차별의 수위는 높아졌고 마침내는 중앙 아시아 벌판으로 강제 이주 시키는 지경에 이른다. 이 문제는 언제 기회가 주어지면 다시 살펴보기로.
알렉산드르 2세의 위대한 업적은 농노제 해방이다. 러시아의 농노는 토지에 법적으로 부속되어 있는 존재. 따라서 지주는 농노를 땅의 일부로 취급하며 그의 자손들도 노예로 부렸다. 말하자면 러시아판 <톰 아저씨>라 할 수 있다. 하지만 17세기 초반까지만해도 농노는 일년에 한번 정해진 날에 다른 지주를 선택할 권리가 주어졌었다. 그러나 17세기 중반에 들어서면서 이 자유도 박탈 당한다. 이를 이용한 도망 노예가 빈번히 발생했기 때문이다. 18세기에 들어서는 인구의 반이나 되는 농노를 매매하거나 증여하는 일이 빈번히 일어났다. 물론 이에 반항하는 농민반란은 끊임없이, 그리고 자주 일어났다.

알렉산드르 2세는 귀족들의 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1861년 <지주의 사유지에 거주하는 농민과 가내 농민들에 대한 농노제를 영원히 폐지한다>는 칙령을 발표, 농노제 폐지를 선언했다. 그런 후 토지를 농민들에게 분배하고 상환금을 부과했다. 상환액의 20%는 지주에게 지불하고 나머지 80%는 49년 만기 6% 이자로 정부가 대출해 주었다. Freedom is not Free! 당시 4,000만 농노가 자유민이 되었지만 무일푼인 이들은 다시 지주 밑에서 부역을 시작했다. 하지만 농노 해방령과 함께 러시아는 산업화되기 시작한다.

1867년 러시아는 알라스카를 720만 달러를 받고 미국에게 넘겼다. 미국은 단 50년만에 이곳에서 100배가 넘는 수익을 올렸다. 그 당시 알라스카는 국제무역의 중심지였다. 중국에서 비단과 차가 들어왔고 냉장고가 없던 시절이니까 얼음까지 미국 남부에 팔았다. 원주민들과의 물물교환으로 바다 코끼리의 상아를 가져가는 재미가 쏠쏠했고. 이곳에 선박을 건조하는 공장이 차려졌고 석탄도 채굴했다. 막대한 금맥이 있다는 설도 나돌았다. 그런데 왜 팔았을까.

이 모든 사업은 러시아-아메리카 회사(RAC)가 장악하고 있었다. 이 회사의 알렉산드르 바라노프는 학교와 공장을 세웠고 원주민들에게 감자 농법도 전수시키는 등 알라스카 개발에 힘썼다. 알류트족 족장의 딸을 아내로 맞을 정도로 알라스카에 애착을 갖고 사심없이 일했다.

그러나 그가 은퇴하자 그 자리를 물려받은 젊은 해군대위가 애써 쌓은 공든 탑을 순식간에 무너뜨렸다. 그는 부임하면서 군 계통의 새 직원과 주주들을 데리고 와 사욕을 채웠다. 알짜배기 사업을 독식하면서 현지인에게서 사들이는 모피 가격은 반값으로 내린 것. 해군 장교들로 이뤄진 경영진의 이같은 횡포는 원주민들의 폭동을 유발했고. RAC가 파산하는 데에는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패전의 후유증을 앓고 있던 러시아는 알라스카 파산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고, 손을 쓸 여유도 없었다. 뿐만 아니라 영국이 알라스카를 봉쇄할 수도 있겠다는 우려도 겹치게 되었다. 그래서 영국에게 빼앗길 바에야 훈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미국에게 팔아야겠다는 결정을 하게된 것.

이 결정에 두 나라 모두 반대했다. 이제 금덩이 캘 일만 남은 노다지를 왜 팔아? vs. 슈어드의 냉장고는 사다 뭣에 쓰게? 의 대결. 그러나 멀리 앞을 내다 본 당시 국무장관 슈어드는 150만 헥타르의 얼음덩이를 위해 껌값을 지불했다. 그런데 이제와서 백악관 사이트에는 수만명이 서명한 알라스카 러시아 귀속 청원서가 뜨고 있다고. 그런데 이를 어쩐다? 노다지에 지불한 껌값이지만 거래는 정정당당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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