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13/2022

코리아월드

휴스턴 코리아월드 주간신문

영화 <미션>을 통해 본 태고의 숨결 아마존의 역사(1)

<라틴 아메리카 19>



아마존 하면 대뜸 떠올리는 나라는 브라질이다. 이 나라가 아마존 숲의 약 60%를 차지하고 있지만 주변의 다른 나라들 역시 아마존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지도에 나타난대로 국토의 60%가 열대우림인 페루를 비롯해서 볼리비아, 콜롬비아, 에콰도르 가이아나, 그리고 수리남 등이다.
세계 육지 면적의 약 5%를 차지하고 있는 이 열대우림에는 약 5만5천여 종의 생명이 살고 있는데 아직도 새로운 종류의 동식물이 계속 발견된다. 그 중 열대 나무만도 2,500 여종이 있다. 이 나무들은 수십 미터씩 자라기 때문에 햇빛을 가려 낮에도 어두울 정도. 이 나무들이 지구 전체 산소의 25%를 뿜어내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아마존을 ‘지구의 허파’라 부른다. 이뿐만이 아니라 아마존 숲은 지구의 기후를 안정시키고 질병을 막는 방어막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러한 열대 우림에서 문명 세계와 단절하고 고립된 채 사는 원주민들이 있다. 브라질 국립 인디오 보호재단(FUNAI)에 따르면 이 밀림 속에는 총 35만8천명이 215부족으로 나뉘어 살고 있다. 이 재단에 의해 소재가 파악된 집단은 고작 4개부족이다. 이 중 브라질의 조에족은 한국의 한 방송국에서 다큐멘터리로 제작한 <아마존의 눈물>로 잘 알려졌다.
1986년 롤랑 조페 감독이 만든 영화 <미션>은 브라질, 파라과이, 우루과이, 아르헨티나와 인접 해 있는 선교 마을들이 세속 통치 권력에 의해 철거당한 실화를 통해 아마존 비극의 역사를 잘 드러내고 있다.
과라니족 선교라는 사명을 받은 예수회 신부 가브리엘이 가파른 이과수 폭포를 아슬아슬하게 기어 오른 후 바위에 자리잡고 앉아 “Gabriel’s Oboe”를 연주한다. 후에 이 곡에 가사를 붙인 것이 선풍적인 인기를 끈 노래 ‘Nella Fantasia’. 아름다운 선율에 흠뻑 취할 즈음 갑자기 화살통을 찬 반라의 인디오 원주민이 나타난다. 그 장면을 떠올리면 지금도 심장이 쫄깃해 진다. 원주민에게 빼앗긴 오보에는 두 동강이 났지만 신부는 그들의 마음을 얻고 포교에 성공, 숲을 나와 산 카를로스라는 마을을 건설하기에 이른다.
기사 출신인 로드리고 멘도사는 원주민을 잡아다 파는 노예상이다. 하루는 자기 애인과 바람난 동생을 살해하고 속죄하는 의미로 자학에 가까운 고행을 한다. 갑옷과 칼 등 잘 나가던 시절에 쓰던 물건들을 넣은 무거운 그물 보따리를 밧줄에 연결하여 어깨에 메고 밀림을 헤치고 강을 건너고 폭포를 기어오르는 행위. 이를 목격한 가브리엘은 그의 손을 잡아 끌어 주고 원주민들은 달려가 그의 밧줄을 끊어 그물 보따리를 절벽 아래로 던진다. 우리가 너의 죄를 용서할테니 과거를 청산하고 새롭게 살라는 뜻. 또 하나의 가슴 뭉클한 명장면이다.
인간의 죄성, 아니면 못된 버릇을 고치는 데에는 두 방법이 있는 것 같다. 분명히 잘못을 저질렀는데도 그 무게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부류가 있다. 대체로 근본 없는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들이 이에 속한다. 이들에게는 적절한 때 충격 효과를 낼 수 있는 한 방이 필요하다. 그래서 돌이키면 잘 된 것이고 아님 할 수 없고. 어차피 인생은 자유의지에 의한 끊임없는 선택이니까. 반대로 늘 죄책감의 무게에 눌려 우울증에 시달리거나 자학하는 부류도 있다. 사랑과 용서와 격려는 이런 사람에게 사용될 때 비로소 진가를 발휘하게 된다.
영화가 건네 준 감동이 너무 커서 이야기가 잠시 옆으로 흘렀는데 어쨌든 멘도사는 이제 죄책감 보따리를 절벽 아래로 떨구고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그 새로운 삶은 산 카를로스로 들어가 가브리엘의 선교 사업에 동참하는 것. 이들의 목적은 첫째가 원주민에게 포교하여 이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는 것이었지만 개종 후에도 계속해서 이들을 보호해 주는 것이 더 큰 목적이 되었다.
노예 상인으로부터 도망쳐 나온 노예를 보호하기 위해 자치 구역을 만들고 민병대를 조직했다. 교회를 짓고 교리를 가르치는 한편 대규모 농장을 경영하면서 이에 필요한 기술을 가르쳐 습득케 했다. 특히 음악적 재능이 있는 이들에게 바이올린 등 악기를 다루고 이를 직접 만들어 수출하기까지 했다. 여기서 발생하는 수입은 공동분배 되었고.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으로는 1750년에 에스파냐와 포루투갈 사에에 체결된 마드리드 조약에서 시작된다. 이로 인해 그동안 에스파냐와 교황청에 속했던 지역들이 포르투갈의 영토로 편입된 것이 문제였다. 이것은 적어도 법적으로는 노예제를 금지해 온 에스파냐와 교황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것, 따라서 선교 마을의 안전도 더 이상 보장 받을 수 없음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교황청은 이 일을 잘 마무리하기 위해 추기경을 보냈는데 그 앞에서 가브리엘 신부와 원주민을 짐승 취급하는 스페인 총독 카베사가 충돌한다. 신부는 과라니족도 영혼을 가진 인간이라는 점을 보이기 위해 반라의 과라니 소년에게 찬송가를 부르게 한다. 그 소년의 노래에 감탄하는 추기경. 그러나 카베사 총독은 ‘사람 말을 흉내 낸다고 앵무새가 사람이 될 수는 없는 법’이라며 일축해 버린다.
이 두 주장 사이에서 잠시 고민하던 추기경은 과라니 원주민을 앵무새 취급하는 카베사 총독의 손을 들어 주면서 인간은 필요하다면 앵무새를 서식지에서 쫓아낼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는 1756년 과라니 전쟁, 아니, 전쟁이라기 보다는 과라니 학살 사건으로 이어지면서 영화는 비극적으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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