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13/2022

코리아월드

휴스턴 코리아월드 주간신문

중남미에서는 유일하게 한국전에 파병한 콜롬비아

<라틴 아메리카 17>



콜롬비아 공화국은 북서쪽으로 파나마, 동쪽으로 베네주엘라, 남동쪽으로 브라질, 남쪽으로 페루, 에콰도르 등 사방이 이웃나라와 맞닿아 있기 때문에 국경 분쟁 문제도 자주 일어났다. 위치도 북쪽으로는 카리브해와 마주보고 있고 북미와 남미의 교차로에 있기 때문에 유럽과 중동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민 왔고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들어 오는 등으로 풍부한 자원 속에 다양한 문화를 아우르는 나라가 되었다. 국가의 정식 공용어는 스페인어이지만 그 외에 70 여 종의 언어가 쓰이는 것만 봐도 그 다양성을 쉽게 알 수 있다.
스페인의 식민지로 있을 때 여러번의 무장 봉기를 일으켰고 1810년 베네주엘라의 시몬 볼리바르의 지원을 받은 마지막 봉기가 성공하면서 1886년의 독립으로 이어졌다. 그 후 1903년 파나마에서 일어난 반란은 미국의 지원을 받으면서 분리되어 나갔다. 독립 이전부터 형성된 두 정당, 자유를 추구하는 자유주의 정당과 기존 사회체제의 안정적인 발전을 추구하는 보수주의 정당 간의 충돌은 천일전쟁(1899-1902)으로 이어지고.
그 후 1928년에는 산타마리아 근처의 시에나가 바나나 농장에서 처우개선을 위한 노동조합이 파업에 들어갔다. 회사 측과 노조간의 협상은 매번 결렬되고 11월 12일에 시작된 파업이 한달이 지나도록 계속되자 그 당시 회사였던 Dole Food Co. 는 콜롬비아 정부를 압박했다.
정부는 계엄을 선포하고 시에나가 광장에서 열린 예배에 참석한 민간인을 향해 발포, 47명에서 2천명에 달하는 사상자를 낸 것. 역사는 이를 쉬쉬했기 때문에 거의 잊혀지려는데 한 작가에 의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다.
콜롬비아 문학의 거장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Gabriel Garcia Marquez는 이 사건이 포함된 1830년부터 1930년까지의 역사를 외할아버지에게서 듣는다. 이 내용을
마술적 사실주의 기법으로 저술한 책이 <백년의 고독>이다. 잘은 모르지만 마술적 사실주의란 실제의 이야기에 저자 특유의 상상력을 가미, 재미있게 풀어나가는, 문학계의 새로운 기법을 의미하는 것 같다. 그래서 현실이란 눈에 보이는 것 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믿고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를 포함시킨 것. 암튼 이런 새 기법으로 쓰여졌기 때문에 이 작품은 가르시아 마르케스에게 1982년도 노벨 문학상을 안겨 준다.
콜롬비아는 독립 후에도 자유당과 보수당의 싸움, 해안지방 사람들과 내륙지방 사람들의 갈등 등 끊임없는 내전과 국경분쟁이라는 거친 역사로 이어졌다. 콜롬비아 국립 역사 기념 센터의 발표에 의하면 1958년부터 2013년 사이에 22만의 인명 피해를 보았으며 그중 민간인이 17만 7천 3백 7명이나 되었고. 그래서 그동안 치안이 망가졌고 이 틈새를 비집고 마약밀매가 판을 쳤다. 그러나 내전도 끝났고 지난 10여년 간 벌인 마약과의 전쟁으로 지금은 많이 안정되었으며 비교적 견고한 경제 구조를 갖춘 국가로 발전했다.
우리는 콜롬비아 하면 커피나 축구를 먼저 떠올린다. 뭐, 워낙 유명하니까. 하지만 우리 한국 사람이라면 콜롬비아가 라틴 아메리카의 여러 나라 중에서 유일하게 한국전쟁에 참전, 직접 피 흘리며 싸워 준 혈맹국이란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아, 그 당시 미국에 거주하던 약 10만명의 멕시코인도 참전했지만 그들은 미국 군인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중남미에서 콜롬비아를 유일한 참전국으로 본다.
5,100명의 콜롬비아 젊은이들이 지구 반대편 그 먼 곳에 있다는 생소한 대한민국에서 전쟁이 났다니까 파나마를 빠져나와 하와이, 요코하마를 거쳐 한국의 중부 전선에 뛰어 든 것. 안데스 고원 지대에서 살다 온 젊은이들이기에 산악 지대에서 벌어진 금성진격전에서 용감하게 싸워 혁혁한 공을 세운다. 이 곳은 북한군과 중공군이 원산에 도착한 군수물자의 병력이 집결되는 중공군 최대의 중간 책원지로 평강을 꼭지점으로 하여 금성 김화를 연결하는 철의 삼각지로 불리는 전략상의 요충지이다.
투입된 첫 전투지에서 보인 이들의 용맹에 내심 감탄하며 기가 꺾인 공산군은 방송을 통해 이들을 회유하기 시작했다. ‘동무들, 왜 알지도 못하는 쬐끄만 나라에 와서 쓸데없이 피를 흘리네. 보따리 싸서 얼롱 돌아들 가라우.’ 아마도 이런 내용의 방송이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이들은 동요되지 않고 말도 안 통하는 낯선 한반도에서 김화 400 고지전투, 연천 180 고지전투, 그리고 전쟁을 마무리하는 연천 불모고지전투까지 충실히 싸웠다. 그 결과 파병된 5,100명 중 전사자는 213명, 부상자는 448명, 그리고 28명이 포로가 되었으나 석방되었다.
전쟁은 그쳤지만 그 후유증은 엄청났다. 그 중 제일 가슴 아픈 것이 전쟁 고아가 무려 10만명에 이른 것. 윤우철 어린이도 그 중의 한 명이었다. 부대 담벼락에 쭈그리고 앉아 있다가 마침 콜롬비아로 귀국하려는 한 병사의 눈과 마주쳤다. 그 당시 귀국하는 병사들은 무기 외에는 무엇이든 가져갈 수 있었다지만 사람을? 하지만 그는 그 소년을 자루에 숨겨 콜롬비아로 데려다 키웠다.
이 어린이는 그 병사의 은혜를 잊을 수 없어 그도 콜롬비아의 군인이 되어 평생을 그 나라를 위해 봉사했다. 이 소식을 들은 한국의 한 기업체에서 이제는 노인이 된 그를 초청, 선진국으로 발전한 한국을 보여 주었다. 소원을 이룬 그 노인은 다시 콜롬비아로 돌아와 여생을 보냈다. 한국에 살고 싶으면 모셔 가겠다는 손주의 제안에 내가 묻힐 곳은 ‘춥고 배고플 때 내 손을 잡아 준 이곳’이라며 그곳에서 눈을 감았다. 전장에 핀 아름답고 가슴 시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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